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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934건

  1. 2007.10.27 수원화성
  2. 2007.10.15 여행
  3. 2007.09.30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4. 2007.09.29 렌즈 85.8
  5. 2007.09.29 책읽기
  6. 2007.09.24 PDA 생활을 청산하다
  7. 2007.09.24 Inside man
  8. 2007.09.07 렌즈
  9. 2007.09.05 휴가 2
  10. 2007.08.09 할리우드로 '승천'하고 싶은 <디워> '미국 본토'서 인정받아야 성공인가 1
  11. 2007.07.01 내가 기억하는 이종범 1
  12. 2007.07.01 이종범 선수 인터뷰 내용
  13. 2007.06.30 야구장에서
  14. 2007.04.25 이사
  15. 2007.04.24 ..인연..

수원화성

여행 2007. 10. 2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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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수원은 단지 의정부에서 출발하는 1호선 라인의 끝(인천과 수원) 중 하나인 곳이다.
그리고 그 끝은 너무도 멀어서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것.

한번 가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험 때문에 가봤기에 무언가를 둘러보거나 자세히 볼 틈 없이 버스안에서 지나치듯 스쳐 지나간 정도.
그것은 단지 야트막한 성이 조금 둘러쳐져 있다는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맘먹고 네비양에게 수원화성을 찍고 나들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나들이는 체력저하와 신체 불균형으로 인한 피로함으로 금새 접고야 말았고,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수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러나, 새로운 수원화성을 발견했다는 것.
제대로 느낀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원전체를 둘러쌓고 있는 듯한 그 성들은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등의
여러 문들과 화성행궁, 방화수유정 등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는 실로 수원의 이전까지의 이미지가 확
달아나고, 새로운 역사유적지로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멋진 곳을 여지껏 방문해보지 못하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깐 걸은 성곽은 독특하게도 높이가 모두 다르다.
산을 오르는 것 같이 구비구비 굽이쳐 있어서 오르고 내리는 여유가 있다.
중간중간 포가 있고 멀리있는 적을 볼 수 있는 직선의 구멍과
가까운 적을 볼 수 있는 경사진 구멍등 현명함이 묻어나는 성벽의 모양새였다.
이정도까지 밖에 못 봐서 알수없는 것들이 더 많지만,
수원에 대한 인식이 바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늘의 나들이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수원 방문을 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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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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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 2007. 10. 1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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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대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실로 오랜만에 모두 빠짐없이 참석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왔다.


재수할때 처음 만나 당구로 맺어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데

벌써 10년을 훌쩍 넘어서는 인연으로 변치 않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동안 서로 다른 대학들을 다니고,

서로 다른 곳에 직장을 갖고, 서로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여전하여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임에 틀림없다.



6-7년 전에 해수욕장을 한번 갔다온 이후로 변변한 여행을 하지 못했는데

누군가 하나 총대를 메고 고생한 보람으로 그리고 모두들의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는 것.

나야.. 날로먹기 달인답게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놀다 온 꼴이 되었지만..

모두들 덕분에 즐겁고 재미나게, 맛난 대하와 신선한 소고기 등을

너무 푸짐히 먹어서 임산부 배가 되어버렸다는 것.


처음 해수욕장을 갔을 때는 달랑 여섯이었지만 지금은 벌써 10명이라는 꽤 많은 인원이

여행에 동반하게 되었고, 아마 다음 여행은 더욱 많은 인원이 되지 않을까 싶고

그리곤 더욱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긴 하지만,

그것이 또 사람사는 모습인지라 자연스레 그런 과정들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으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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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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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표가 생겼고
원래는 지난 추석에 볼 예정으로 예약을 했으나
날짜를 잘못 예약한 관계로 어제 보게 되었다.
토요일 근무를 하고 조금 늦게 온 여자친구와
한양대에서 만나 가려고 보니 아무래도 밥먹을 시간이 없을 듯 하여
중간에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과 우유를 사갖고
차안에서 먹으면서 갔다.
다행히 8시 15분전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화장실을 들렀다 나오니 10분전.
티켓 교환해서 무대안으로 들어가니
곧 공연 시작할 분위기.
표 받던 언니가 나와서 공연 준비 사항에 대해 설명.
공연 중 핸드폰은 반드시 꺼주실 필요없고 마음대로 통화해도 상관없으며
공연 중 사진촬영은 절대 금지하지 않으니 맘껏 찍어서
잘 나온 사진은 홈페이지도 올려주시기 바란다는 다소 황당한 멘트.
이랬으면 카메라도 가져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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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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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85.8

사진 2007. 9. 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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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바꿨다
지금까지 18-55mm 번들렌즈와 50.8 단렌즈만을 갖고 다니다가
전부 팔고 거기다 pda까지 팔고 렌즈를 하나 구입했다.
85.8. 별칭은 애기만두이고, 또다른 닉으로는 여친렌즈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50.8 보다 조금 더 나은 화질을 보여주는 렌즈이다.
가격 차이는 50.8 이 10만원 가량한다면
85.8 은 40만원이 넘는다. 약 4배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화질 또한 네배로 좋아지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50.8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내공의 부족을 렌즈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습성으로
기기탓을 함과 동시에 좀더 고사양의 비싼 렌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곤 신의 등장과 함께 하는 짓이 지름이다. -..-
그러한 이유로 퇴근시간에 급작스레 직거래를 통해 사게 된 렌즈이다.
어쨌든 그런 단순한 이유로 렌즈를 구입하게 됐지만
다시 좀 더 열심히 사진을 찍는 계기가 되었다.
좀 더 들이대고 좀 더 찍으러 다니고 그러기 시작했고, 더욱 그럴 예정이다.
하지만 이 렌즈의 단점은 화각이 작은 관계로 풍경을 찍기엔 조금 단점이 있다.
좀더 넓은 화면을 담기 위해선 이러한 단렌즈는 아무래도 화각이 좁다.
하지만 좁은 화각으로 좀 더 다양한 풍경을 찍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넓게 다양하게 담지는 못하지만, 좁게 치밀하게 담을 수 있기에.
어쨌든 이 렌즈로 다양한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내공을 증진시켜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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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다양한 2007. 9. 29. 15:43
우연찮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여러 강의 내용들 중 네 개를 신청해서 듣고 있는데
그중 열심히 듣고 있는 건 영화감독 워크숍하고 시나리오 작법이다
앞에건 변영주 감독이 강의하고 하나는 심산이 강의한다.
심산이야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변영주는 사실 유명하지 않은 감독이다.
나야 머 예전부터 그녀를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놀랍지 않았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나도 약간은 의외이긴 했지만
예전 그녀의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들었던 그녀의 해박함과
당당함, 그리고 흡입력 있는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기에
아주 괜찮은 강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요즘은 EBS 시네마 천국을 진행하고 있지 않던가?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

역시 강의를 들으면서 그녀가 참 재미있는 강사라는 걸 느끼고 있다.
강의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컸지만 그녀의 강의 스타일 또한 매력적이다.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호소력을 갖고 얘기하는 것이 참 맘에 든다.
그러면서 그녀가 얘기하는 소설들을 읽고 싶어졌다.
첫 강의에서 박완서를 소개하며 7~80년대 소설을 쓴 보석같은
작가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들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들었다.



가네시로 가즈키
- 레볼루션 No.3
- 플라이 대디, 플라이
- Go
- 연애소설

미셀 우엘백
- 플랫폼

척 팔라닉
- 파이트 클럽


박완서
- 나목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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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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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pda를 접한 건
2000년 가을 경, Palm Vx 를 갖게 되면서 부터이다.
소형기기에서 8년이란 세월은 냉장고나 텔레비젼으로 따지면
약 2-30년을 아우르는 기나긴 세월인 셈이다.
그만큼 성능, 디자인의 변화가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Palm Vx는 디자인에서만큼은 지금 내놓아도
어디에 빠지지 않는 절대 뽀대를 자랑한다.
담배크기보다 약간 큰 크기에 유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라인.
그리고 가벼운 무게까지.
그래도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지라
기능의 단점은 극복할 수 없다.
흑백에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고 있으며,
블루투스, usb, 네비, 오디오, 무선랜 등등의
기능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다만 기본에 충실한 일정관리에 일기정도만이 가능할 뿐이다.
좀 더 찾아보면 다양한 이것저것을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팜에 입문하는 고딩, 중딩에게 줘도 씨알도 안먹히지 않을까 싶다.
가끔 중고거래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으나
그정도에 팔기에도 아까울 뿐이다.
단지 소장의 가치가 있을 뿐. 가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그런 소장의 가치란 말이지.


한동안 뜸하던 pda 생활을 다시 재개한 건 Tungsten C.
그 시기에 가장 최상위 기종이었다.
당근 칼라에 빠른 CPU, 정말 유용한 내장키보드, 그리고 무선랜까지
SD 카드 삽입가능하고.
지금 사용해도 성능이 어디 떨어지지 않는 기종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터넷 같은 것이야 그 작은 pda로 할 일이 거의 없지만
내장 키보드는 작지만 강력한 매력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생각하며 글쓰는 걸 즐기던 나로서는
그것으로 자잘한 글들을 참 많이도 썼었던 기억이 난다.
대략 써놓고 컴퓨터로 옮겨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했던.
글을 잘 안 쓰게 되면서 멀티미디어 기능이 약하고
사운드가 모노에 제대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기능들 때문에
팔기는 했지만 참으로 아쉬운 기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한가지 흠은 너무 무겁다는거.
케이스까지 넣으면 뚱땡이에 무게감도 장난이 아니어서
주머니 같은 곳에 넣기엔 상당 무리가 따랐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 이후에도 다시 한번 더 사용했던 기종인 만큼
기본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멀티미디어 기능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는
잠시 외도를 하여 클리에로 넘어가보기도 했다.
TJ37과 TG50.
가장 짧은 기간 사용했던 TJ37이지만
이것도 참 괜찮은 기종이었고, 특히나 레어 아이템인지라
상당 매력있었던 기기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바와 조금은 다른 기기였기에
바로 TG50으로 넘어갔었고,
이 기종도 다시 자판이 있었던 터라 나름 한동안 사용하긴 했으나
그리 오래 쓰진 않았다.
그리곤 다시 팜으로 돌아왔고
다시 돌아오면서 Tungsten C 로 왔었다가
멀티미디어 기종인 T5로 교체.

가장 최근까지 갖고는 있었지만
사용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사고는 차를 몰고 다니던 관계로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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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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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man

영화를보다 2007. 9. 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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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지 않은 우울한 날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퇴근하기를 기다리면서
연락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클로저에서의 멋진 영국인으로 나온
클라이브 오웬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완전범죄를 일으킨 그가 어떻게 계획하고
진행시키며 난국을 헤쳐나가는지가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이다.

은행을 털기 위해 침입하고
외부와 단절을 시키고
인질들을 감금시키고
계획을 순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시간을 지연시키는 모습 등이 치밀하게 엮어진다.

가끔 석방되는 인질들은 웬지 의심이 간다.
웬지 범죄를 일으킨 놈들이 내보내는 프락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것조차 맞는지 틀린지 확실치 않다.

똑똑한 남자 둘의 대결 구도는 치밀함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똑똑한 체는 혼자 다하지만
결국은 이용만 당하는 모습의 조디 포스터.

월렘 데포의 본래 이미지인 성격 강한 모습이 아닌
어딘지 연약해 보이는 서장의 모습은 사뭇 재미있다.
그리고 쉴새 없이 떠들면서 시시껄렁한 농담만 해대는
살찐(일부러 찌운건지 갑자기 늘어난건지는 모르는) 모습의
덴젤 워싱턴의 색다른 모습도 즐거운 볼거리다.
강한 인상의 클라이브 오웬도 멋지고.

그리고 신기한 건 이 영화를 스파이크 리가 만들었다는 것.
상당 그답지 않은 영화적 행보이긴 하지만,
이런 영화로도 충분히 역량있는 감독임을 보여줬다는 것.

갑자기 뜬금없이 고른 영화였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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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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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사진 2007. 9. 7. 14:23
캐논 렌즈의 이름

EOS : eos는 'Electric Optical System'의 약자로서 카메라의 인터페이스를 전자식으로 만든 카메라를 이야기합니다. 참고로, EOS는 그리스 신화의 새벽의 화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EF : 'electronic Focus'의 약자로서 렌즈의 앞에 사용되며 자동초점(AF) 렌즈를 말합니다. 캐논의 렌즈는 R Series -> FL Series -> FD Series -> EF Series의 역사를 가지게 되는데 EF는 1995년도부터 EOS SLR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출시되었습니다. 현재 캐논 DSLR에 사용되는 모든 렌즈는 EF 렌즈라고 보면 됩니다.

EF-S : 캐논 EF 렌즈 중 디지털 전용 렌즈를 뜻합니다. 1:1 바디에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크롭바디에서는 유용합니다. S는 'Short Back Focus'를 의미합니다.

L : 'Luxury'의 약자로서 사치 또는 호화스러움을 뜻합니다. 각종 특수 재료와 기술을 동원해 만든 고급 렌즈를 말하며 가격이 매우 고가입니다.

USM : 'Ultra Sonic Motor'의 약자로 즉, 초음파 모터를 말합니다. 렌즈를 구동시키는 모터로 초음파 모터를 사용하여 포커싱 속도와 소음을 최소화했습니다.

TS-E : 'Tilt & Shift for EOS'의 약자로서 왜곡 현상을 수정할 수 있는 틸트 쉬프트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특수 렌즈를 말합니다.

IS : 'Image Stabilization'의 약자로 어두운 곳이나, 흔들림이 많은 곳에서의 촬영 시 정확한 사진을 찍기 위해 사용되는 기능입니다.

DO (Diffractive Optics) : 'Diffractive Optics'의 약자로 굴절 광학만을 이용할 때 망원으로 갈수록 심한 색수차를 겪게 되는데,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큰 렌즈나 무거운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DO 기술을 적용하면 가볍고 작은 렌즈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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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여행 2007. 9. 5. 04:1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시각 오전 3시 16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11시쯤 티비를 보면서 잠이 살짝 들었는 데
티비 소리에 깨고 나선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커피를 마시곤
아직 잠을 안 자고 있다.
덕분에 오랜 만에 글도 쓰는 중.

한창 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나니 내가 너무 불쌍해져서
5일 휴가를 한꺼번에 써버렸다.
그렇게 하다보니 양쪽 주말, 휴일이 겹쳐지면서
무려 9일간의 연휴가 되버렸다.
지금은 그중의 4일에서 5일로 넘어가는 사이. 딱 중간이다.
마침 중간 점검용이 되어버렸군.


휴가의 시작이랄 수 있는 금요일은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관계로
그럭저럭 보내고, 토요일은 어딘가로 출발하기엔 밀릴거 같아서,
그리고 애인이 워크샵에서 돌아오는 날이라 바로 출발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고로
일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강원도 고성으로 휴가를 갔다.
2박 3일을 보내고 오늘, 벌써 어제가 되어버렸군, 도착.
회사 사람이 콘도를 회원으로 예약해줘서 저렴하게 전망좋은 곳에서 보내다 왔다.

출발하는 날 무언가를 잘못 먹었는지, 애인이 계속 아팠다.
약도 먹고 손도 따고 밥 대신 죽을 먹고 해봤지만, 휴가 내내 아파해서
고생했는 데 다행히 돌아오는 날은 좀 나아진듯.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아직 안 좋은 상태..

근처에 해양박물관이 있고, 곳곳에 큰 해수욕장들이 있고,
통일 전망대까지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한 곳도 둘러보진 않았다.

몸이 안 좋아서 열심히 돌아다니거나 하진 않았지만,
딱히 여기저기 막 구경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리 불편한 건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었고,
날씨도 썩 좋아서, 가지고 간 자전거는 잘 타고 돌아다녔다는 거.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멀지않은,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이 근처에 있는
호숫가 주위를 한바퀴 돌았는데 호수가 워낙 커서 돌진 못했다.


점심은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막국수를 먹었는 데
유명세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한 맛.
막국수 국물을 동치미 국물로 말아먹는 데 딱히 맛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메인 메뉴인 막국수보단 부수적으로 시킨
두부가 더 따끈 쫄깃해서 맛있었다.
거기 이름이 화진포 봉평 막국수 던가.
3대째 한다던데, 쭉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은 한계령이 수해로 복구 중이래서 돌아왔는 데
그길이 미시령인지는 잘 모르겠다
갈때는 진부령을 지나갔고, 올때는 같은 길이 아닌걸로 봐서는
미시령이 맞는 거 같긴 한데 영 확실치는 않다.

출발전 유부초밥을 준비해서 미시령 쯤 상당히 높은 곳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물과 같이 먹은 맛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과 산속 깊은 경치와 적당히 고픈 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그러한 것들이 어우러져서 최고의 식사는 산 중턱에서 하고 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집에서 뒹굴뒹굴 하면서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하루를 보내지 싶다.
하루정도는 빡시게 자전거를 타고 싶고,
하루정도는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고,
나머지는 이제 푹 쉬어야지.
몸이고 정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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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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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립싱크 가수의 발언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아티스트로 보아주세요."

립싱크를 '예술'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기술'로 보아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이 발언이 분명히 일깨워주는 바가 있다. 적어도 당시의 가수들은 상품을 양산할망정, '예술가'가 되기를 소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예술'과 '상품'을 둘러싼 논쟁은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수가 얼마나 많은 음반을 팔고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가다. 특히 외국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연예사업가'가 문화예술계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미국 본토'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청와대는 가수 비의 미국진출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홍보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어떤 언론은 이를 비가 '미국정벌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브리핑>은 "인기가수 '비'가 뉴욕에 간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홍보자료에서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미국 진출은 "아시아 시장을 다 먹기 위해"서다.

"비는 아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굳이 미국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박진영: 역설적이지만 아시아 시장을 계속 잡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성공해야 '아시아 공인 1등'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다. 거대한 인구를 지닌 아시아 시장을 다 먹기 위해 미국 진출이 필수다." (<조선일보> 2006년 2월 11일/ 청와대 브리핑 2006년 4월 13일, "인기가수 '비'가 뉴욕에 간 까닭은?")


'미국 진출'에 담긴 백인우월주의 이데올로기

미국은 다인종·다문화국가이며, 이 사회의 주요 구성원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비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의 뉴욕 공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비는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중 한 명을 골라 선물 주었다. 이때 그는 좀 독특한 선택을 했고, <뉴욕타임즈>는 이 사실에 주목했다.

"관객은 대략 95퍼센트가 아시아계였고, 그 가운데 최소한 90퍼센트가 여성들로, 언제라도 소리칠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비는 이렇게 선언했다. '외로워요.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한 그는 관객들 가운데 젊은 여자 한 명을 무대 위로 불러 냈다. 그리고 장미꽃다발과 곰인형을 건네고 가볍게 그녀를 안았다." (<뉴욕타임즈> 2006년 2월 4일, "미소 띤 한국 인기가수, '나 외로워요'")

<뉴욕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가 골라낸 사람은 동양계가 아닌 소수의 관객 가운데 한 명이었다."

비와 기획사로서는 '미국진출'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그림을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아시아계 미국인과 그를 보기 위해 미국까지 찾아온 팬들을 배제하고 금발의 백인을 고르는 결과로 나타났다.

심형래 감독 역시 미국의 (백인) 배우가 "한국의 전설"이라는 대사를 말할 때 눈물을 쏟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관객은 <디워>가 '애국심 마케팅에 의존한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가 진심으로 미국 속에 한국을 심고 싶어한다고 믿는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말이다. 우리가 늘 먹는 김치도 미국인들이 '원더풀'하면 더 좋은 음식이 된다.) 왜 꼭 그래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심형래 감독의 강박에 가까운 소망은 조선시대의 왕자와 공주를 500년 후 로스앤젤레스의 백인 남녀로 환생시킨다. 비가 백인 여자를 안는 것으로 표출되었던 '미국 진출의 꿈'이 <디워>에서는 백인으로 태어나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진출하고 싶은 것은 '미국시장'이라기 보다는 '백인의 마음'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열정'은 언제나 순수한가

▲ <디워> 할리우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심형래 감독.
ⓒ 영구아트
비의 옛 기획사 대표인 박진영은 '아시아 시장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진출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미국진출 노력이 반드시 전략적 선택만은 아닌 듯하다. 그 역시 심형래 감독과 같이 "미국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개인적 열정을 드러낸 바 있다. 국내에서는 이 '열정'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진출지'의 평가는 좀 더 가혹하기 마련이다.

"박진영은 비가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거듭해서 무대로 나왔다. 그는 힙합 스타일의 영어로, 비가 부른 노래를 모두 자신이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숀 콤스(디디)와 10대 가수인 조조를 불러내어 비를 칭찬하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1990년 중반에 발표했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박진영이 최신곡을 비에게 부르게 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뉴욕타임즈> 2006년 2월 4일, "미소 띤 한국 인기가수, '나 외로워요'")

심형래 감독은 <용가리> 시절부터 '우리도 할리우드 수준의 특수효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욕망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열정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관객들은 익숙한 한국 풍경이 나오고, 액션장면이 '할리우드 뺨친다'는 사실만으로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미국관객들은 오직 이 점만으로 극장을 찾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지의 데렉 엘리 기자의 평가는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디워>의 특수효과에 대한 집착이 영화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 2월 9일자 기사에서 <디워>가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은 비디오용 컬트영화가 될 것 같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디워>는 오직 (특수효과)기술에 대한 관심 하나만 가지고 미국과 세계시장을 뚫으려 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극중인물과 그들을 통한 이야기 전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쩌면 심형래 감독의 열정은 소박한 편이었던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영화는 이렇게 감독을 대신해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용가리>를 보며 모두가 실패라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용가리>는 엄청난 일을 해 냈습니다."

그가 말하는 '엄청난 일'이란 '<용가리>가 미국의 비디오 가게에 꽂혀 있었다'는 것이다.

<디워>가 '올 여름 최악의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극단적인 평가에도 심형래 감독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면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인 <스파이더맨3>와 <트랜스포머>와 더불어라면."

<용가리>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디워>

<디워>에 대한 <버라이어티>지의 평가가 가혹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 비판은 여러모로 곱씹어 볼 만하다. 흥미롭게도 이 미국의 연예지는 심형래 감독이 참고해야 할 영화로 다른 할리우드 액션영화 대신 한국의 <괴물>을 꼽는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보여준 한미관계의 절묘한 아이러니를 왜 영화 속에 집어넣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디워> 이후 현란한 시각효과를 갖춘 할리우드식 영화가 한국영화의 미래처럼 논의되는 상황에서 <버라이어티>의 지적은 새겨들을만하다. 어쨌든 '진출지'로부터 온 견해가 아닌가.

컴퓨터 그래픽 처리가 좀 더 세련되었을망정, <디워>는 <용가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재치 없고 지루한 '기능적' 대사의 나열, 감독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 개연성('현실성'과 다르다)을 무시한 이야기 전개, 영화와 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액션장면 등 <디워>는 특수효과 하나로 덮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영화 <디워> 한 장면
ⓒ 영구아트
<용가리>의 가장 큰 문제가 특수효과가 아니었음에도, 심형래 감독의 관심사는 오로지 컴퓨터 그래픽을 개선하는 데 집중된 듯하다. <용가리>와 마찬가지로, <디워>역시 '시각효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영화가 '시각매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한다. 용의 전설과 주인공 남녀의 관계를 모두 지리한 대사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제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특수효과를 기다리며 이 부분을 견뎌내지만, 미국 관객들의 경우 상당수가 액션장면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리를 뜨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디워>는 한국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인 '로케 영화', 혹은 '할리우드' 상표를 붙여 역수입한 영화로 기능할 것이다.

벌어들이는 돈이 전부는 아니다

심형래와 '비'는 각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계의 모델'로 환영 받은 바 있다. 심형래 감독은 '신지식인'의 칭호를 얻었고 '비'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두 정부가 정책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껴안는 가운데 예술과 문화를 '수출산업'으로 육성했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후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문화가 '상품'이 된 시대지만, 영화와 음악의 가치가 오직 벌어들이는 돈에 의해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의 한 여가수를 좋아한다. 그녀는 그 흔한 해외공연 한 번 하지 않지만, 나는 주저 없이 그녀를 세계적인 가수의 한 명으로 꼽는다. 세계적인 가수가 꼭 세계적인 명성을 누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평생 사랑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진출'하거나 '투자'한다고 해서 누구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명 잡지의 표지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외국의 흥행차트에 곡을 올린다고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가수나 영화가 미국시장에서 관객들을 끌어 모으지 못한다고 해서 현지의 가수나 감독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한 사회와 문화권은 나름의 감수성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해야만 '진짜'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은 한국이 오랫동안 품어 온 서구적 (정확히는 미국에 대한) 열등감과 더불어 문화적 취향 및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와 음악을 사업으로 이해하든 예술로 이해하든, '할리우드 지배'의 꿈을 품든 '빌보드 정벌'의 열정을 실천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다. '왜 저렇게 미국에 집착할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도가 그들의 이름과 상품에 부가가치를 더해준다면 거기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 '야심'과 '열정'을 '한국인'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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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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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10여년 전이다.
때는 9월쯤이었고, 경기는 시리즈 였는지 정규시즌이었는지도
정확치가 않다.
상대 또한 삼성이었는지 엘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는 그당시 잘 던지던 마무리였고,
아마도 엘지의 이상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점수는 3:2 해태의 패색이 짙어있었다.
9회초 2아웃에 9번타자의 간신히 포볼을 골라나가 주자 1루 상황.

그때 이종범은 등장하였고, 정말 그의 뒤쪽으로는
광채가 나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3루측 관중석은 흥분의 도가니였고
무언가를 해주리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는 그 기대감을 여지없이 만족시켜주는
최고의 1번타자이면서 클러치히터였다.

등장과 동시에 환호성이 쏟아지다가 타석에 들어서자
모두들 숨죽여 바라보았다.
초구에 배트는 날카롭게 돌아갔게 거의 홈런을 예감했다.
3루쪽 깊이 날아가는 날아가는 그 볼이 정말 너무나도 아쉽게도
홈런이 아닌 파울볼이 된 것이었다.
아쉬운 파울볼이 됐지만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2스트라이크 2볼 상황
5구째.
순간 이종범의 배트는 특유의 날카로움을 뽐내며 돌아갔고,
공은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가르면서 열심히 날아갔다.
1루 주자는 2아웃이었기에 열심히 내달려서 홈까지 들어왔고,
이종범은 2루를 돌면서 힐끗 보더니 냅다 3루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오는 것이라. 그리곤 멋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상당히 정확한 송구였음에도 이종범의 빠른 발과 멋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당당히 세이프.
그리고 주루를 무릎으로 밟고선 3루 관중석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치켜든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이 시대 최고의 영웅이었다.
크지 않은 키에 마른 체구였지만 그 모습에선 최홍만보다 더 거대한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그의 당당함은 시대를 풍미하기에 충분했다.

다음 타자의 짧은 안타에 홈으로 들어와서 역전에 성공했고
9회말 수비에선 멋진 수비로 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팀에 승리를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이종범이 돌아온 이후 침체되어있던 야구계에는 딱 평균 5천명의 관중이 증가했다.
이런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작게는 해태의 영웅이었지만, 그를 보기위한 상대팀들의
관중 증가 또한 무시못하는 요인이었다.

돌아와서는 자기몫은 충분히 해주던 그였지만
작년부터는 확실히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가 다시 한번 화려한 부활을 알리며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멋지게 은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가 명예롭게 은퇴할 때 꼭 그를 보러 갈 것이다.
그리곤 한마디 해주고 싶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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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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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기아에서 최고 연봉(5억원)을 받는 이종범이 1군에서 밀려나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은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종범은“은퇴는 내가 결정한다”며“다른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고 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타율 1할8푼… 2군 추락… 은퇴 압박 받는 ‘야구 천재’ 기아 이종범 “다른 팀으로 방출되거나 연봉 깎이는 한이 있어도 한번 더 해보고 싶다”


지난 26일 광주 무등경기장. 초여름 열기가 후끈한 구장에서는 2군과 육성군(신인유망주를 훈련)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1군 선수들은 없었다. 한화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대전에 가 있었던 것.

선수들 틈에서 배번 7번이 보였다. 최근 은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종범이었다.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프로입문 첫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 MVP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일본 무대에서 쓰라린 좌절을 겪고 2001년 다시 돌아와 다시 ‘바람의 아들’로 부활했던 스타다.

소속팀 기아에서는 “경기당 3000명은 이종범이 몰고 온 관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주장으로 한국의 4강을 이끌었다. 이 야구천재가 지난 19일 1군에서 밀려났다. 올 시즌 타율 0.183(180타수 33안타)·1홈런·11타점. 명성이 무색한 성적표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2군으로 내려갔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소속팀 감독은 “여러차례 ‘구차하게 선수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좋은 모습일 때 떠나는 것이 낫다’는 말을 이종범에게 했는데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취재진에게 했다. 말 그대로 은퇴 압력이다.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최근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깎은 상태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요즘 제가 1할8푼을 치고 있어요. 배팅이 문제인 거죠. 베테랑인 제가 상대 투수와 기(氣)싸움에서 먼저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그런 게 안 나오니까 마음이 불안하고…. 팀 성적도 안 나오니깐 고참으로서 그것도 힘들었죠.”

―기싸움에서 진다고 했습니까? 예전에는 후배 투수들이 이종범이 타석에 나오면 손이 덜덜 떨렸다고 했는데, 누구한테 밀리다니요?

“아무래도 내 자신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방망이가 안 맞더라도 타석에 들어가면 단순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타율이 나쁘게 나오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약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살아 나간 다음에 도루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 최근엔 (상대 투수가) 스피드가 안 나오는 선수인데도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야 하나’ 하는 불안함이 몰려왔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나요?

“야구 시작한 뒤로 처음이죠.”

―1군에서 내려오자 마자 다음 날부터 은퇴설이 보도 됐는데.

“저도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걸 봤어요. 한달 동안 열심히 해서 재기를 해볼 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은퇴를 해야 하니 뭐니’ 이래서 서운했죠.”

―서정환 감독이 따로 불렀던 건가요?

“네. 팀 고참으로서 감독하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오버가 되다 보니까…. 뭔가 보여주고 나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은퇴 얘기가 곧바로 나오니깐 서운하기도 하고. 내가 못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프로의 세계가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정말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는데, 1년 못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이렇게 몰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분도 그렇고 해서 다음날 머리도 짧게 깎았죠.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웠어요. 내 자신을 떠나서 팬들을 위해서도 꼭 살아나야죠. 열심히 최선을 다 하고, 안되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을 해서 내 미래를 얘기 할 거고.”

―한달 동안 컨디션을 추스른 뒤 거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요. 이종범 본인은 열심히 했는데, 구단이나 감독이 ‘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 딱히 어디가 안 좋아서 1군을 떠난 게 아닌 만큼 나아진 걸 증명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그건 감안하고 있어요. 그땐 제가 결단을 해야죠. 제가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어요. 한달 뒤에 컨디션이 올라온다는 보장도 없고, 1군에서 불러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거야 감독 마음이지, 제 마음이 아니잖아요. 아마 팀이 꼴찌가 되면 저를 1군에 안 올릴 겁니다. 저를 올려봤자 필요가 없잖아요? 솔직히 여기(기아) 아니더라도 상관 없어요. 다른 팀에 가서 연봉이 깎여서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 그만 둬야죠.”

―서 감독한테 섭섭한 감정이 많은 것 같네요.

“한달 동안 1군에서 내려가 있으라는 것에 대해서 섭섭한 것은 없어요. 다만 명예롭게 은퇴를 마련했니 뭐니 하고 기자들에게 말하는 게 서운한 거죠(이 부분에서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변했다). 그냥 ‘한달 뒤에 오라고 했다’는 얘기만 하면 되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책임도 물어야 했을 테고…. 쫓기는 입장이니깐 그렇겠지요.”







―본인이 ‘아 이제 이종범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나요? (이종범은 데뷔 초기 5년간 연평균 21.2개의 홈런을 쳤지만, 올해는 단 1개에 그쳤다.)

“볼 같지도 않은 볼을 못 치고 삼진 당할 때 ‘아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2005년을 제외하고는 2001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주장을 맡아왔는데, 이번에 이종범 선수가 1군에서 내려온 뒤 장성호 선수가 주장이 됐더군요. 얘기 들은 게 있나요?

“솔직히 나랑 상의한 바가 없어요. 몰라, 감독 입장에서 팀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장을 시켰다는 얘기도 있는데. 임시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 끝날 때까지 하라고 했다는데…. 아, 이건 무슨 뉘앙스인지 저도 잘 모르겠고(목소리 톤이 또 한번 올라갔다)….”

―항의 안 했나요?

“따지고 들어갈 그런 일도 아니고. 제가 남한테 싫은 말은 잘 안 해요. 혼자 삼키고 마는 스타일인데. 언젠가는 열심히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오명을 씻고 나가야 하지 않나, 내가 할 얘기를 하고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가야죠.”

이종범은 1군에서 내려온 뒤 감독이나 단장 등 구단 고위 관계자들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정정민씨)과 아이들(1남1녀)이 실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나이 먹으니깐 가족이 제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힘든 시기이긴 하지만, 집사람하고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옆에 있으니깐. 잘 안 나가고, 집에 빨리 들어오고 하니까 좋아하죠. 아들 정후(서석초등학교 3학년)가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정후도 아빠가 유명한 사람인 줄은 알아요. 집사람이 아빠가 아파서 집에 있는 거라고 설명한 것 같아요. 아들은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방에 아빠 사진도 붙여놓고 그런 가요?

“아니요. 자기 방에는 스즈키 이치로(미국 메이저리그서 활약하는 일본 프로야구선수) 사진을 붙여놓고 있어요. 엄마가 ‘이종범이 아니라 이치로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라’고 매일 얘기하니까요.”

―일본에서 돌아올 때도 부인의 의견이 많이 작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엔 뭐라고 하던가요?

“집사람은 ‘은퇴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당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은퇴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남은 한 달을 마지막 기회로 삼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달라. 안 되면 그 때 가서 결정하라’고 얘기하더군요. 일본에 있을 때만 해도 야구를 잘 모르던 사람이었죠. 마음 고생하는 저를 보면서 뭐라고 얘기도 못하고, 그냥 힘내라는 편지를 적어서 제 가방에 넣어주곤 했어요. 그런데, 이젠 12년을 같이 살다 보니까 다 알죠.”

―체중이 전성기 때보다 많이 불었죠?

“지금 78㎏쯤 나갑니다. 전성기 때는 68㎏이었죠. 그때는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었죠. 지금 10㎏ 늘어난 것 중에서 근육도 있겠지만, 60%는 나이 먹으면서 붙은 살일 겁니다.”

실제로 근력 훈련하는 이종범을 지켜본 결과 군살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어깨에 메고 하던 100㎏짜리 역기에서 이종범은 20㎏짜리 원판을 빼내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야구 철학은 뭡니까?

“예전에는 유니폼만 입으면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야구는 9명이 하지만, 개인이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인이 팀과 팬을 위해서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노력해야만 ‘베스트 9’에 들 수 있죠. 노력하고 쉬지 않는 선수만이 진정한 승자가 됩니다. 특히 프로에선 더 그렇죠. 프로에서는 그게 바로 돈과 명예로 연결됩니다. 저도 제 아들한테 항상 노력 이상 중요한 게 없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줍니다.”


# 야구 몰랐던 아내, 이젠 전문가

―방망이에 ‘忍(인)’자를 새겨 놓았는데.

“1996년에 방위 복무를 마치고 인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셨는데, 그 땐 잘 몰랐거든요. 나이 들면서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특히 일본에서는 이 ‘참을 인(忍)’자를 보면서 생각 많이 했죠. 프로의 세계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종범 선수 말고도 그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데.

“우리 팀 2군 선수들은 제가 준 방망이 하나씩은 다 갖고 있습니다. 다른 팀에도 있고…. 2군의 경우는 경제적으로 방망이 하나가 아쉬운 선수들도 있고 해서 자주 주죠. 제가 준 방망이로 안타를 치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 동안 김응용, 호시노,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감독 등과 함께 했는데, 어떤 감독의 스타일이 제일 마음에 들고, 또 닮고 싶은 스타일인가요?

“저는 일단 플레이 자체는 선수가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전의 연습이나 모든 면에서 선수에 대해 신뢰가 있으면, 선수는 따라간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김응용 감독님이나 김성한 감독님 스타일이 좋아요.”

―그 중 한 분만 꼽으라면요?

“김응용 감독님이요.”

―김 감독은 좀 괴팍스러운 면이 있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성질이 괴팍하긴 하시죠. 하지만 그런 면이 있어야 감독의 리더십이 발휘되거든요. 어쩌면 카리스마하고도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종범도 카리스마 얘기에선 빠질 수 없다. 에피소드 하나. 인터뷰를 하기 직전 이종범은 후배들과 체력단련실에서 근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앞서 땡볕 아래 타격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에어컨이 가동되는 체력단련실에 들어오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누군가 “시장바닥이냐. 훈련들 해라”하고 주의를 줬지만, 소용없었다. 한동안 묵묵히 바벨과 씨름하던 이종범이 결국 한마디 날렸다. “아, 정말 ‘절라’ 시끄럽네. 입으로 훈련들 하냐.” 이후 훈련이 끝날 때까지 체력단련실에서 입을 여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삼성 양준혁 선수와 자주 비교됩니다. 양준혁 선수는 93년 신인왕을 탔고, 이종범 선수는 그 해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지요. 그런데 요즘 이종범 선수는 1군에서 밀려났는데, 양준혁 선수는 펄펄 날고 있거든요.

“준혁이 형은 1년 선배이자 프로입단 동기입니다. 지금 잘하는 걸 보면 저보다 훨씬 관리를 잘한 것 같아요. 준혁이 형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말 더 많은 기록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준혁이 형을 보면, 나는 왜 매 타석마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서지 못했나, 더 간절했더라면 지금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질책을 하게 되지요.”

―예전에는 경기 시작 사이렌을 울렸었죠.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종범 선수가 홈런을 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첫 타석 초구 홈런을 몇 개를 쳤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선두타자 첫 타석 홈런 기록은 40개가 넘을 겁니다. 2위랑도 많이 차이 나고요.”

―야구를 하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렸을 때는 힘들어서 많이 울었죠. 선배들한테 맞고 그러면서…. 커서는 시련이 많이 찾아왔을 때 울었어요. 일본에서 부상 당했을 때도 그렇고, 짐 싸가지고 오기 전에도 울고. 남이 보는 앞에서 울지는 않았어요. 힘들거나 하면 혼자 술 먹고 울었죠. 오히려 애기 엄마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부인도 야구광이었겠군요.

“아니요. 와이프는 야구를 전혀 몰랐어요. 프랑스로 디자인 공부하러 유학 갔다가 저랑 결혼했는데, 예전에는 야구를 하나도 몰랐죠. 그런데 요즘은 전문가가 다 됐어요. 저보고 몸이 빠져서 치니 어쩌니 하는데…. 야구 시작한 아들 녀석이 그 잔소리 들으려면 힘 좀 들 겁니다.”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에는 무엇이 제일 힘들었나요?

그는 4년간(1998~2001년) 311경기 출장에 27홈런 174득점 99타점 53도루의 초라한 성적으로 끝났다.

“여러 면에서 힘이 들었습니다. 그 중 제일 큰 문제는 부상을 당한 거지요. 가와지리 테쓰로라는 투수의 볼에 왼쪽 팔꿈치를 맞았죠. 수술하면서 철심을 박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술을 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어요. 그 때 이후로 ‘팔로 스루(Follow through·공을 치거나 던진 후에 스트로크나 팔의 동작을 계속 진행하는 일)’가 되질 않아요. 감각을 잃어버린 거죠. 내가 가지고 있던 동작이 모두 흐트러졌죠. 팔꿈치 다치기 전에는, 내가 봐도 내 체격에 어떻게 이런 홈런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스윙이 간결하면서도 스피드가 빨랐는데, 이상하게 나쁜 점만 버릇으로 남게 되더군요.”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 1년차 때까지는 제 훈련 다 끝나고 다른 선수들이 배팅 볼 칠 때도 알아서 수비훈련을 했어요. 누가 보던 말던 공을 잡아 1루 송구까지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선수들이 없어요. 프로 선수는 코치가 시키기 전에 뭔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연습하고 채워야 합니다. 자기 부가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그걸 안 해요. 아직까지 간절한 소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들이 돈이 많은지…. 왜 1군에 안 올려 주느냐고 불평만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완벽하게 만들어야 1군 기회를 주는 거죠. 문제가 있으니깐 안 올리는 겁니다.”

―야구 말고 다른 스포츠도 잘 하는 게 있나요?

“축구를 좋아합니다. 원래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던 광주 서림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었어요. 운동장에서 학교 야구부가 훈련을 하는 걸 보고는 야구를 시작한 거죠. 고 2때 축구를 하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어요. 동계훈련 시작하기 직전이었죠. 고 3 형이 강하게 슛을 날렸는데, 그걸 막겠다고 붕 떴어요. 그런데 볼이 제 발에 맞으면서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땅바닥에 떨어졌죠. 36시간 만에 깨어났어요. 그 땐 MRI(자기공명영상)검사 같은 것도 없었죠. 다행히 수술은 안 했는데, 그 다음엔 감독님이 축구를 못하게 했어요. 일본에 있을 때는 골프도 배웠습니다. 비(非)시즌에 가끔 하는 정도죠.”




# 돈이요? 벌만큼은 벌었어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아, 나도 축구를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한데.

“지금도 가끔 아들 녀석한테 얘길 하죠. ‘차라리 축구를 해라.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로 가라’ 이렇게 말이죠. ‘야구장은 전국에 30개정도 밖에 없는데, 축구장은 300~400개가 된다’는 얘기도 하지요. 물론 애 엄마한테는 엄청 욕 얻어 먹죠.”


―돈은 아쉽지 않을 만큼 번 것 아닌가요?

“그렇죠. 벌 만큼은 벌었죠. 앞으로 은퇴를 하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을 육성하고, 공부도 더 하고,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겠죠. 야구 해설도 하고 싶고….”

―요즘 시간 여유도 있는데, 친구들이랑 자주 어울리나요?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 심재학 선수랑 부부 동반해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팀은 연패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밥 먹고 다닌다’고 인터넷에 올라와서…. 어쨌든 이젠 연습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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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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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서

사진 2007. 6. 30. 17:18

지난 6월 20일
잠실 야구장에 삼성과 엘지의 경기를 보러 가다

오전에 일이 끝나서 집에 들렀다가
밥먹고 물리치료 받고 출발하느라 늦은
관계로 야구장으로 직접 향했다.
그러느라 회사에서 출발해서 고생해서 왔지만
즐거운 야구장 구경..

게다가 2대 0으로 경기도 이김.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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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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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다양한 2007. 4. 25. 23:13
지난 2년새에 벌써 두번째 이사다.
원해서든 원하지 않아서든
그렇게 이사를 하게 되었고,
덕분에 이사하는 동안 매번 부모님만 고생하신다.

분당에서 편도 13km를 운전하다가
남양주로 이사와서 편도 50km, 왕복 100km가 되는 거리가
출퇴근 하다보니 확실히 피곤하다.
기본적으로 7시에 일어나던게 5시 30분에 일어나는 중이다.
그렇게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고.

거리가 멀어짐으로해서 분명 훨씬 더 피곤해졌다.
게다가 아침에 테니스까지 시작해서
운동하는 날은 집에서 6시에 출근을 한다.

다행히 카풀을 하는 관계로 차를 운전하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 밖에 되진 않지만,
일어나는 시간이 당겨짐으로 해서 생기는 피로감은 어찌할 수가 없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수 밖에.

카풀을 하면서 좋은 점은 역시 기름값을 많이 아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운전 안하는 날은 자면서 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운동시간에 딱 맞출 수가 없다는 것과
자고 가더라도 차안에서 자는 거라 그리 개운치 못하다는 것.
그리고 퇴근 시간도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과
약속 잡기도 어렵다는 것.

서로 간에 장단점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는 참 미지수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이 이럴 수 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헤쳐나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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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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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다양한 2007. 4. 24. 22:51
지난 목요일 차를 사게 됐다.
그전부터 예정하던 것이었으나
이런저런 기회가 잘 맞아 새차같은 중고를 괜찮은 가격에 사게 됐다.
여러 가지 추가된 옵션을 감안하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사게 된 것이랄까.

지지난주에 함 보려고 했던 사람에게 목요일에 연락이 왔다.
시간 있느냐고.
이번 주 월, 화 KoLAS 실사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아서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온 연락이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고, 또 그러기도 싫어서 금요일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퇴근하고 바로 목동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차 산거 자랑을 조곰 하다가 어떻게 얘기가 맞아서
임진각에 드라이브 가게 됐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고, 늦은 시간이어서
막힘없이 그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임진각이라 많은 기대를 했지만
늦은 시간에 날씨도 썩 좋지 못해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사이가 더 좋아지는 기회가 되었다.

2000년 처음 대학 다니던 중 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관리자였고,
난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서너달정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되었고,
그 후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다가
다른 재택 아르바이트를 통해 또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고,
영화적 취향이 비슷해서 가끔은 만나서 영화도 보고
코드가 맞는 누나,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

금요일 밤에 드라이브 갔다가 헤어지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만나서 영화를 보려다가
차가 막히는 바람에 영화 시간은 놓치고,
호수공원에 가서 산책로를 약 두시간 정도 걸으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어제 오늘 많은 고민 중이다.
주말에 전주영화제에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해서,
더욱 많이 가까와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좋아하는 누나임에는 틀림없다.
관계가 발전한다는 것이 좋은 일임에도 틀림없고.
하지만 걱정인건 그 다음이다.
좋은 관계를 지속될 수도 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면 분명 소원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정말 편하고 친하고 좋은 사람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극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이성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좋은 경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무 조심하게 된다.
확 다가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있고, 이눈치 저눈치를 살피게 되는 입장이다.

마음가는데로 행동 하는 것이 나의 인생 모토이기도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지 않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친구로....

혹은 나혼자 너무 열심히 고민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사람은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 데 말이지....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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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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