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휴가를 냈다.
1월1일을 끼고 2일 휴가를 내 연휴를 즐길 생각이었는 데 벌써 휴가를 낸 사람이 많다보니 인원 구성이 맞지 않는다며 더 이상 휴가 내는 걸 일정팀에서 반려하는 바람에 31일로 날짜를 변경했다. 그전날 팀 회식이어서 늦게까지 강남역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 두시에 집에 들어왔음에도 느즈막히 잠을 자는 호사를 부렸다. 오후에 강원도에 예약한 펜션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부모님한테도 얘기를 했지만, 엄마 아빠는 안 가시겠단다. 지난번 항암치료도 감기 때문에 못 받았는 데 괜히 몸도 피곤한 상태에서 어딘가를 갔다오지 않고 집에서 쉬겠단다. 강제로 어째할 수도 없는 것이라, 세가족만 떠나기로 결정했다. 너무 늦으면 오후에 강원도나 정동진으로 해돋이 보러 가는 인파로 몰릴 것이 예상되 빨리 출발하려 했으나 이러저러 하다보니 역시 오후 점심 먹고도 한참이 지난 3시쯤에나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시간까지는 막히지 않아 목적지까지는 휴게소에 잠깐 들른 것까지 해서 두시간 반. 크게 막히는 거 없이 양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숙박은 티몬에서 하는 거 급하게 잡아서 백강리조트 방두개짜리로 잡았는 데 우리 식구만 있으니 널널하다. 방은 뭐 생각보다 괜찮은 수준. 구석구석 살펴보면 안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으나, 하루밤만 묵는 데 굳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그만하다 싶었다. 도착한 시간이 벌써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체크인 하고 짐만 올려 놓고 대충 정리만 하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왔다. 이효석 문학관이 있는 메밀밭 근처의 동이네 막국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추운 겨울에 늦은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앞에 차가 있길래 그래도 조금은 있나보다 했는 데 우리만 덩그러니 식사를 했다. 막국수와 비빔밥을 시켜서 셋이 나눠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려는 즈음 한 테이블이 더 들어오드만. 안주용 메밀전과 부침을 포장해서 숙소로 가지고 왔다. 맥주를 뜯고 아들에게는 사이다를 주고, 같이 올 한해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건배. 하지만 준성이 할머니가 아프고, 할매가 아프니 빨리 나으시기를 기원하며 다시 건배!!.
오랜만에 티비를 틀어놨더니 한해를 보내는 뉴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건사고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안타까움을 얘기하고, 그리고 새해에 희망을 얘기하는 전형적인 포맷. 손석희가 진행을 하고 있지만, 기본틀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 jtbc스럽지 않은 내용이라는 점에 끌려 보고있긴 하다. 쓰레기 종편이나 같은 레벨의 공중파보다는 낫다는 느낌에. 그렇게 맥주 한잔에 여유를 즐기다 보니 어느 새 피곤이 몰려 온다. 몇년 전부터인가는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않게 된다. 보신각에 붙어 있는 전두환 이니셜도 싫고, 작년인가는 대통령의 힘인지 제야의 종소리 타종식도 공중파에서 나오지도 않았단다. 시장이 박원순이라서. 각 방송사마다 쓰레기처럼 내보내는 각종 대상들을 보는 것도 싫고 해서, 피곤한 눈을 억지로 비비며 12시를 넘기려 노력하지 않는다. 피곤하면 자는 거다. 그러다보니 몇년 전부터 10시, 11시면 잠을 잤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10시가 좀 넘으니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잤다.
숙소 바닥은 따뜻한데, 외풍이 심해 실내 공기가 차다. 잠은 7시쯤 깼으나 이불을 박차고 나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더 누워있다. 일출은 7시 40분이라는 데, 포기하고 이불 속으로 커튼만 열어 놓고 바깥만 구경했다. 해가 비치는 방향이 아니라서 그렇게 또 하루의 해가 떴구나 느꼈다.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하고, 휘닉스 파크로 갔다. 동절기 놀이시설인 스키나 스노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와이프와 나는 아들 썰매태워주는 걸로 하루의 일정을 다 쏟았다. 11시쯤 하루 종일권을 끊어서 오전 나절에는 와이프가 태워주고, 점심먹고 오후 나절에는 내가 태워주면서 아들 썰매 놀이를 했다. 썰매가 보드보다 훨씬 재미있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사람이 더 많아지면 더 기다려야 겠지만..), 타고 내려오는 잠깐 잠깐은 추위도 잊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들이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이다. 하지만, 일곱살이 된 아들은 이제 스키를 타보고 싶단다. 지나칠때마다 스키를 타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에 오면 꼭 스키학교에 보내주는 걸로 약속했다. 맘먹고 하루나 이틀정도 스키학교에 보내면 스키를 충분히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시간의 눈썰매로 지친 몸을 끌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 아빠는 형이 낮에 와서 점심도 같이 나가서 추어탕 먹고, 형이 끊어놓은 5시 영화표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보고 오신단다. 그 사이 우리가 도착해서 짐 풀고 밥 해놓고 가래떡 하나씩 구워먹으면서 있으니, 7시 반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같이 저녁을 먹고, 우리가 놀다온 얘기, 형이 왔다간 얘기 등을 나누고, 각자 방으로. 조금 있으니까 엄마가 우리 방으로 잠깐 들와서 아들을 보고, 가시려다가, 저쪽 방 화장실을 누가 청소했냐고 묻길래 와이프가 했다고, 얘기하니, 당신이 할 것을 뭣하러 했냐며, 고생했다며, 칭찬을 하고 가신다. 그렇게 말한마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졌다. 난 그걸로 만족. 와이프 기분 좋아지고.
와이프는 맥주한잔을 하고, 아들을 쥬스를 한잔 하고, 나는 커피를 한잔을 하며, 새해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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