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황금연휴
부모님과 같이살기 시작하면서 휴가를 잘 안내게 된다.
작년에도 여름휴가 5일을 제외한 나머지 휴가는 연차 보상비로 올초에 받았다. 그닥 많은 금액이 아니어서 별로 기분이 나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비슷하게 휴가를 쓰게 될 거 같다. 변한게 있다면 8일은 무조건 휴가를 써야 된다는 것. 여름휴가때 쓰고 나머지도 언젠가는 써야 한다. 아직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을이 지날쯤 한번 더 며칠 붙여서 휴가를 낼까 고민중.
휴가 없이 일상을 살아서인지 요즘 몸이 좀 안 좋다. 봄을 타는 나는 봄 나는 데 꼭 고생을 하고 그 여파로 아직도 여기저기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어찌됐든, 봄 동안 없는 살도 좀 빠졌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좀 많고, 그런 와중.. 5월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다.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해서 하루 휴가만 내면 토, 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까지 쭈욱 이어지는 말그대로 황금연휴. 몇달 전부터 해외여행은 표가 동이나고, 국내여행지 숙박도 예매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연휴가 다가올 즈음 닥친 세월호 참사는 온 나라를 시름에 빠지게 만들었고, 나 또한 시름에 빠지고, 회사도 시름에 빠졌다. 그 덕분에 황금연휴를 반납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잘못은 엄한 놈이 하고 대가는 우리가 치뤄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여튼 시대적 우울함을 뒤로 하고, 우리는 나름의 일정을 짜고 소화하기로 결정.
이번 연휴는 숙소 예매도 안하고 무작정 강원도 정선을 이곳저곳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크게 정한 곳은 정선 5일장과 정선 카지노, 그리고 탄광마을 정도. 그외 나머지는 물흐르는 대로 우리도 흘러가기로.
아들의 부지런함과는 다르게 와이프와 나는 여행을 가서 늘 게으름으로 많은 것들을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오는 게 다반사. 그리고 늘 아프거나 해서 휴가지에서 즐겁게 지낸 기억이 별로 없다. 도착 당일 하루를 그냥 까먹거나 컨디션이 좋아도 너무 늦게 일어나서 게으름을 부리다가 정작 한 두군데 구경하고 오거나, 늘 부족하고 조금은 아쉬운 여행을 하고 온다. 여행이 꼭 타이트하게 강행군을 해서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사진에 담아갖고 오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숙박지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여행. 발길이 닿는대로의 여행. 결과적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인 여행이 되었다. 중간중간 숙박도 저렴하고 하고, 그 덕분(?)에 일찍 일어나서 좀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지금부터 여행지를 하나씩 둘러보자..
정선5일장 들어가자마자 아들 눈에 띈 말놀이
우선 알아보고 간 것 하나는 정선 5일장. 5일장이라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못간다는 생각에 장날이 열리는 날 가기로 결정. 정선 5일장이 서는 날이 2일, 7일 그리고 토요일이란다. 연휴 시작 다음날이 2일이어서 그날 일찍 출발해서 바로 시장으로 가기로 결정. 아들 유치원을 안 보내고 준비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특유의 게으름으로 11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 그나마 다행인건 10시 30분쯤 출발했다는 것 정도. 대략 세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기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열심히 밟았다.
정선장터의 시작을 알리는 곳 입구와 출구가 같고 여러곳으로 사통팔달 뚫려있다
배가 안고픈 아들은 나몰라라다. 시장 음식보다는 달달한 것들이 좋겟지만 시장에 왔으니 시장 음식을 먹어야지
정선5일장은 예상대로 2시쯤 도착. 생각외로 가는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았다. 우리집이 강원도와 조금은 가까운 길에 살기
도 했지만, 금요일은 애매한 날이라 출발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듯. 주변을 한바퀴 돌며 주차를 찾다가 공영주차장을 발견. 워낙 유명해져서 장이 서는 날이면 이제는 주차장은 만차가 되고 주변 유료 주차장까지 생긴 듯하다. 5일장 근처 강변에 주차장이 있는 데 그곳이 모두 만차인 듯.
모듬전이다. 작은 걸로 시켰어도 충분히 많은 양이 나온다. 5천원
시장은 사람이 많아지고 관광객이 북적이면서 외부인들도 유입이 되고 활력은 넘쳐나고 있는 데, 옛 느낌이 조금씩 없어지는 듯하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현대화의 물결일 게다. 그래도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에 안타까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아들에게 뽁뽁이 말과 와이프에게 효자손을 하나씩 쥐어주고 부깨미와 녹두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걸로 휴가를 시작. 배가 덜 고픈 탓에 올챙이 국수를 못 먹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시장 구경 시작. 쑥떡과 비슷한 수리취떡을 하나 사고, 시장을 좀 더 구경하고 여러 가지 나물을 둘러보았지만, 아쉽게도 사가지고 차에 넣어놓으면 이틀 후에 다 시들어 버리기에 곰취나물이나, 곤드레 나물을 사는 것은 포기.
걸어다니다 보면 이런 좋은 녀석들이 눈과 코를 자극한다. 안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인적 많았던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정선카지노.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부터 폐인의 느낌이 나는 카지노를 가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에 화암동굴을 들르기로 결정. 이번 여행 컨셉에 딱 맞는 결정 과정이라 매우 맘에 들어하며 화암 동굴에 도착. 5시 30분까지 도착하면 마지막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단다. 그걸타고 올라가서 동굴입구부터 약 1.8km 걸어내려오며 탄광 동굴과 석순, 종유석 등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동굴안에 여러 가지 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만날 수도 있다. 꽤 긴 길이라 대략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놀랐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에 한 번더 놀랐다. 곳곳에 도깨비들 모습에도 놀라고, 추워서도 놀라고.. 꼭 따뜻한 잠바를 하나 정도는 갖고 들어갈 것. 사람들이 일하던 모습. 원시적으로 모두 기초적인 도구만을 사용해서 뚫고, 깨고, 캐고, 들어날렸을 것들을 생각하면 참..
엄청난 깊이를 자랑한다. 그옛날 어떻게 내려갔을지 싶다. 지금은 인위적으로 이렇게 계단들을 다 만들어놨는데..
현재 석탄을 만들기 위한 탄광이 두곳 정도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폐광이 되었고, 일제시대에 뚫어 놓고 아직 찾지 못
한 탄광이 30여개나 된단다.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맥은 그렇게나 깊고도 험하다.
동굴을 지나 끝나는 길에 종유석, 석순 등..
얼굴사이즈가 비슷한듯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진달래가 잔뜩 피어있다.
동굴 입구에 있는 열차
동굴을 나와 찾아간 곳은 정선 카지노. 폐광촌의 그늘을 벗겨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내국인들을 위한 카지노. 초반엔 논란도 많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폐인들 또한 많이 있는 곳. 그렇지만 나처럼 가족이 와서 잠깐 즐기다 갈 수 있는 곳. 아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와이프가 아들과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나 혼자 갔다오기로 했다. 같이 가서 즐기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들어갔으면 오만원씩만 쓰기로 했는 데 혼자 들어간 바람에 나혼자 10만원을 썼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싶긴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최대한 빨리 하고 나오기로 하고 한두군데만 살피다가 룰렛으로 시작. 우선 5만원만 만원짜리 칩으로 바꿨다. 그리고 한판에 하나씩. 내리 다섯판을 한번도 맞추지 못했다. 헐..강원랜드. 정선 카지노. 호텔슬워서 놀기 좋다
5만원을 다시 바꿨다. 만원짜리 네개 5천원짜리 두개. 또 연속 네판을 한번도 못맞췄다. 어째 이럴수가..ㅜㅜ 마지막 남은 오천원짜리 두개 한번에 두군데에 배팅. …………. 하지만 이것도 나가리. 쩝..
순간 갈등. 아직 10만원이 더 있지 않은가.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현금이 하나도 없었기에 20만원을 찾았다. 그리고 10만원만 쓰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으나 이렇게 되고 나니 본전 생각이 난다. 여기서부터가 승부다. 나와의 숭부.. 지면 그것으로 패가 망신의 지름길로 가는 것. 다시 돌아보지 않기로 하고 손털고 나왔다. 극적 드라마라면 다시 들어가서 그지가 되는 것..
아들은 자고 있고 와이프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씨익 웃으며 얘기했다. 다 잃었어..소파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아들. 9시면 잘시간..
멋진 야경이 펼쳐져 있는 정선 카지노를 뒤로 하고 숙소를 정하기 위해 내려왔다. 아들이 곯아떨어져 있어서 가까운 곳에 빨리 숙소를 정하기로 해서 가까운 모텔로 결정. 다행히 침대방이 아닌 온돌방이 있어서 짐을 풀고, 잠자리를 청하다. 첫날의 휴가는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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