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갑자기 아버지가 오셨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송년회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오신 것이다.
사실은 손주와 며느리를 보고 싶은데, 동창들과 송년회 겸 핑계가 되어 준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 주저리 꺼내 놓으셨다.
문화원에서 서예를 배운지 일년정도 되가는 데,
엊그제부터 전시회를 하느라, 작품을 쓰느라 고생했던 것 하며,
전시회 시작하고, 컷팅식에 참석해서 같이 컷팅도 하고, 당신 글씨 앞에서 사진도 찍고,
누나가 난도 하나 가져와서 기분좋으셨으며, 오늘 아침엔 전시회 마무리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빨리 내려가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파트 경로회에서 총무를 맡으셔서 총무주재 회의를 열시부터 해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내려가서 준비를 해야한다시며, 어제밤부터 일찍 내려간다는 걸 몇번이나 강조하셨다.
며칠 전에는 근처 산에 올라갔는 데, 컨디션이 좋아서 너무 오랫 동안 걸어다니고 바위를 움직였더니
다음 날부터 허리에 무리가 가서 며칠째 고생하다가 어제부터 조금 나아지셨다는 것.
경로당 총무 하시면서 다른 곳도 구경하시고, 회장하고 다니면서 여러 군데 송년회 모임에도 참석하시고,
그러느라 매일매일이 바쁘고, 한가한 시간에는 붓글씨 연습하고,
문화원 선생님이 내년에 더 연습하시면 등단하시게 도와드리겠다고 해서, 더 열심히 연습하시는 거 같다.
1~2년 내에 전시회도 하실 것 같다.
어쩌면 적적할지도 모를 송년회에 바빠서 저렇게 많이 활동하시고,
그러면서 더 건강도 유지하고 하는 모습이, 자식 입장에서는 사실 가장 좋은 모습이다.
맨날 어디아프다, 병원가야 한다, 그러시면, 훨씬 피곤하고, 힘들텐데, 그런것과는 완전 반대의 모습이라,
고민 안해도 되고, 신경 덜써도 되니, 더없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새벽에 갑자기 아들 덕에 잠에서 깼다.
할아버지가 지금 가셨다는 거다. 6시에 일어나서 6시 반쯤 가시면 되는 데, 왜 벌써 가셨냐니까, 여섯 시가 안 됐단다.
잠에서 깨자마자 준비하고, 손주하고 인사하고 아들 내외 자고 있을 거 같으니 그냥 자라고 냅두고 출발하셨나 보다.
급히 전화했더니 안 받는다. 몇 번을 했는 데도 안 받다가, 겨우 받는다. 어디까지 가셨냐고 물어보니까
준성이 태권도장 앞이란다. 추우니까 얼른 들어오시라고 했는 데도, 그냥 가시겠단다.
얼른 들어오시라고 버럭 좀 했다. 알겠단다.
5분이 안되서 들어오셨다.
옷을 갈아입고 바로 차로 가서 고속터미널에 모셔다 드렸다. 6시가 갓 넘은 토요일 아침이니 막힐리가 없다.
20분 만에 도착해서 7시 10분 티켓을 구입하니, 40분 정도 여유가 생겨 따끈한 만두국을 한그릇씩 먹었다.
그랬는 데도 7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잠깐 기다리면서 형이 왔다간 얘기, 영준이가 대학 합격해서 누나가 좋아한다는 얘기, 영준이도 밝아졌다는 얘기,
수능 끝나면서 독서실이 한가해진 얘기. 등등을 하셨다.
내일은 지관 배우는 곳에서 또 현장 답사갔다가 오후에 오신다면서 준성이는 저녁에 오면 된다고.
아들이 방학했으니 또 일주일간 할아버지 집에 나들이 갔다 올 예정이다.
할아버지는 손주랑 놀아서 좋고, 준성이는 마음껏 게임 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도 자유로워져서 좋고.
모두가 좋은 한주일을 보내게 된다.
7시쯤 서산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마시고, 버스에 올라타셨다.
여러번이나 고맙다고 하셨다. 정이 많으신 양반이다.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잘 표현하신다.
그에 반하면 난 정반대인 사람이고, 그런 표현을 전혀 안 한다.
버스가 떠나기 전 잠깐 10분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났고.
지금의 아빠가 집에 혼자 계신 외로움만 제외하면, 가장 행복하신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신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거, 공부하고 싶었어도 가난해서 하지 못했던거, 서예도 배우고, 지관도 배우고.
여유롭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용돈으로, 여기저기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은 것.
건강도 나쁘지 않고(이가 안 좋긴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재미있는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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