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첫날을 보내고 둘째날이 밝았다.
어제 입학식에 같이 못해서 미안했던 와이프가 아침을 챙겨서 같이 가기로 했다. 난 좀 천천히 갈까 하다가 특별히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로 준비하고 뒤쫓아갔다. 아이는 3층 강당에 모였다가 바로 담임샘과 같이 교실로 가고 와이프는 회사로 가고 나는 남아서 학부모 연수를 들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내용과 처음 초등학교를 보내면서 가져야 하는 부모의 마음 등에 관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별로 내용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혁신학교에서 아이가 자유롭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학교 생활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혁신학교의 취지가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딱 맞는 듯 싶다.
집에 잠깐 와서 라면을 먹고 설겆이를 하고 다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급식을 마치고 나온 아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주민센터에 도서관이 있어서 책을 읽어볼까해서 들어가 책을 고르고 보았으나 아들이 가자고 하는 바람에 20분도 안되 바로 나왔다. 그리곤 공원을 산책하자고 꼬셔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궁동공원을 오르기 시작했다.
겨울동안 추워서 가보지 못한 곳이었는 데, 날씨가 좋아서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들은 걸어올라가는 걸 너무나도 싫어한다. 힘들다고. 간신히간신히 꼬셔서 올라가다가 운동기구에서 운동도 하다가 흙장난도 하고 돌도 던지고, 궁동공원이 생각보다 높아서 올라가서 보면 가재울 동네가 쫘악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연세대학교쪽 신촌이 보인다. 생각보다 전망이 좋다. 그닥 높다 생각지 않았는데....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그닥 재미있어하진 않는다. 간신간신히 데리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리곤 아이는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단다. 집에만 있는 것이 그닥 도움이 되질 않아서 집에 왔다가 바로 놀이터로 나갔다. 그리곤 또 한참을 노는 데 너무 피곤함이 밀려와서 아이는 놀라고 하고, 나는 잠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한숨 잠이 들었다. 아들은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놀이터로 가보니 열심히 놀고 있다. 하지만 그닥 재미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집안에서는 활기차고 밝은 아이이지만 엄청나게 소심한 아이인지라 자기가 먼저 손내밀고 친구를 사귀는 성격이 못된다. 그러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극적으로 놀지도 못한다. 아마 내가 같이 없어서 더욱 재미있게 놀지 못했을 것이다. 데리고 집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집에는 들어가기 싫은가 보다. 저녁 시간이 얼마남지 않아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니 스파게티가 먹고 싶단다. 스파게티 재료와 내일 돌봄 교실에 먹을 간식거리인 빵을 사기 위해 잠깐 다녀올테니 놀고 있으라고 했더니, 그러겠단다.
빠리 빵집에 가서 빵 몇개와 계란 한판과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한 휘핑크림을 사가지고 오니 아들이 왜이리 늦게 왔냐고 화를 낸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는 데, 아마도 그 시간까지도 그닥 재미있지 못한 시간이 됐나보다.
집에 들어가서 스파게티를 해주기 위해 가자고 했는데도 여전히 더 놀이터에서 놀겠단다. 그래서 10분만 놀고 오랬더니, 시계가 없어서 시간을 알 수 없단다. 기분이 아주 나쁜 말투다. 그래서 한번더 타일렀는데도 똑같은 말투다. 버럭 화가났다. 그래서 화를 내려 바로 집으로 데려갔다.
왜 자꾸 맘대로만 하려고 하느냐며 화를 냈다. 그랬더니 울먹울먹인다.
집에와서 자리에 앉혀놓고 얘기를 했다. 화가 났지만, 참고 설명을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아빠 말이 맞는지 아닌지 답을 하랬더니, 아빠가 맞단다.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한다. 혼내는 건 그것으로 끝내고 저녁을 만들었다.
근데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스파게티 면이 없는거다.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할까, 다시 사가지고 와야하나 고민하다가 라면발로 만들어주기로 했더니, 아들도 괜찮단다.
우유와 마늘과 휘핑크림을 이용해 소스를 만들었다. 양파도 넣고 베이컨도 조금 넣고, 햄도 있어서 잘게 썰어서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후추를 조금 뿌려줬더니 괜찮은 맛이난다. 거기에 라면을 살짝 익혔다가 면만 건지고, 파스타는 한참을 삶아서 같이 넣으니 먹을만하다. 아들도 맛있단다. 근데 라면이다 보니 금방 소스가 닳아져버린다. 물기를 다 흡수해버려서 너무 뻑뻑해져버렸다. 음료수에 먹으니 먹을만 했지만 아들도 저번보다 많이 먹지는 않고, 나도 적당히 먹었다.
지난번 유리병에 들어있는 소스를 이용했을 때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 유리병 소스는 어쩐지 조미료 맛이 너무 많이 난다. 그에 반해 오늘 만든 재료는 훨씬 신선하고, 달콤하고, 맛있었다. 와이프에게 맛을 못 보여준게 아쉽다.
다음에 다시 해줘야겠다.
저녁을 먹고 아들과 레고를 만들었다. 레고 테크닉 두개를 합쳐서 더욱 큰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이었는 데, 지난번 1/3쯤 끝냈던 것을 약 두시간에 걸쳐서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나자 아들은 졸립다며 바로 이불로 들어가려해서 치카치카를 시키러 갔다. 화장실에 같이 가서 도와주니 바로 우리 침대에 가서 눕는다. 그리곤 5분도 안되 잠이 든다. 아들은 9시만 넘으면 졸려하고 잠이 든다. 안자려고 버티거나 밤늦게까지 놀지 않고 침대에 누우면 금방 잠들곤 한다. 참 착한 아이다.
하지만 우리 침대에서 잔다는 것.
와이프나 나, 둘 중에 하나는 바닥에 내려와서 자야되는 상황이다.
얼릉 자기방 가서 잘 수 있도록 연습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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