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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2 어느 70대 노부부 이야기

 

 


전라도 시골의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남의 땅에 농사를 짓다가 무일푼으로 결혼을 하니 늘 배고픔에 허덕였다. 무작정 아는 친척의 이름만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 살이를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은 삶이다. 방한칸을 겨우 얻어 자식을 낳고 장사를 시작해서 열심히 노력하니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만한 형편이 되었다. 약간의 돈이 생기자 아는 친척과 동업을 하기로 하고 사업을 키웠지만, 그 사람에게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고 다시 무일푼이 되었다. 다시 맨바닥이다. 그런 와중에 자식이 하나 늘어 세 아이를 키워야 한다. 과일가게, 유리가게 닥치는 대로 시작한다. 그래도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까닭에 하는 장사마다 실패하지 않고 꾸준히 잘 해나가는 편이다. 그러면서 가세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다. 


 어느날 사고가 발생한다. 옛날 아궁이 집에 연탄으로 불을 때다가 연탄 가스가 집안으로 들어와 온 가족이 가스에 취했는데 그래도 어른과 조금 큰 아이들은 괜찮았으나, 젓먹이를 갓 뗀 막내 아들이 가스에 취해버렸다. 놀란 마음에 민간요법으로 빙초산 냄새를 맡으면 괜찮아 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도하려다가 2살배기 아이의 목으로 빙초산이 흘러들어간다. 식도가 타들어갔다. 그렇게 아이는 아프기 시작했고, 그 아이의 목은 그렇게 가늘어졌다. 아이가 조금씩 커갔지만, 먹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씹어서 삼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유, 미음 등 마실 수 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 어떻게든 수술을 시켜야 하지만, 약한  체력으로 큰 수술을 받기 힘든 상태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다가 생일이 빨라 7살에 취학 통지서가 나왔으나 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8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갔으나, 다닌지 한달만에 병이 난다. 그리고 큰 병원에 입원한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 생활이 힘들었나 보다. 어느 날 쓰러졌고, 이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로 바로 연결되는 호스를 만들어 그곳을 통해 영양 공급을 한다. 수술을 하기 위해선 조금이나마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한 6개월 정도 지나자 건강이 차츰차츰 나아지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는 와중에 버마 아웅산 사태가 일어난다. 그로 인해 다친 군인들이 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수술이 한달간 늦춰진다. 그렇게 어렵게 시간이 지나 수술을 시작하고, 10시간의 수술 시간이 걸려 수술을 마친다. 식도 이식수술. 그때 당시 대부분의 병원에서 못한다고 얘기했었고, 제일 좋은 국립의료원에서 간신히 진행된 수술이다. 다행히 잘 끝났고, 회복이 남아 있다. 


어렵사리 아이를 키우면서 비싼 병원비로 가세가 많이 기울었지만, 다시 열심히 장사를 시작해서 조금씩조금씩 재산도 불려간다. 죽을 거 같았던 자식도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학교도 다니고, 어느덧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한 덕에, 사람들로부터 신임도 얻게 되고, 가세도 조금씩 늘려간다. 아이셋을 데리고 시끄럽다고 쫓겨나는 설움을 몇차례 당해도 보고 월세 살이도 여러 차례 하다가, 드디어 장만한 첫 집. 내집에서 방이 세개지만, 큰 방에서 모여서 잔다. 아이들은 쌔근쌔근 잠이 들고, 남편도 피곤했는지 코를 골고, 기쁨과 슬픔과 서러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주루룩..


딸은 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을 다니다가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지만, 동갑내기라 그런지 툭하면 싸움이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같이 사네 못사네를 반복하며, 친정을 왔다갔다 하고, 그 와중에 화해 시키러 가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윽박질러 보기도 한다. 다행히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아들 딸을 낳고, 싸움은 하지만, 그럭저럭 사이가 나쁘지 않다. 그렇게 딸은 재테크도 잘하며, 큰 걱정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 사위도 가정적이고, 처가댁에도 잘 하고.. 


첫째 아들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해서 말썽이다. 운동권에 가담해서 가라는 군대도 가지않고, 화염병 들고 시위대에 나가기 일쑤다.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학교내 운동권 단체 장이 되고, 결국은 지명수배까지 내린다. 경찰에서 집까지 찾아와 조심하시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간다. 제명에 못살겠다는 걱정이 들어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친구집에서 술먹고 자고있는 아들을 잡아다가 군대로 보낸다. 최전방에서 30개월을 군대 생활을 하면서 조금 철이 들었나보다 싶었지만, 이제는 글을 쓰겠다고 한다. 밥못먹고 사는 지름길이라 생각이 들어 여지없이 말리러 다니지만, 이제는 말릴 힘은 없고, 아들의 의지는 좀 더 확고하다. 그렇지만 아들의 의지를 꺾고자 하는 의지 또한 확고해서 부딪칠 때마다 큰 싸움이 벌어진다. 그 덕에 집은 전쟁터다. 편안한 안식처로서의 집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서로들 부딪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은 늘 자신의 왜소한 체구에 컴플렉스다. 남보다 힘이 약하고, 작다고, 늘 소극적이다. 그래서 어떠한 기회가 찾아와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질 못한다. 그래도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겠기에 가까운 친척과 동업도 하지만,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고, 다시 조그마한 가게를 시작해서 유리를 팔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리가 안 좋아서인지 시절이 안 좋아서인지 잘 안되 다른 걸 도모하다가 과일 장사를 시작했는 데, 목도 괜찮고 해서 이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장사에 재미를 붙여간다. 구석진 곳에서 하다가 차츰 세를 넓혀가며 이제는 야채가게를 시작한다. 열심히 하다보니 시골에서 대주는 사람도 늘어나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단골 손님도 늘어간다. 이렇게 일거리가 늘어나다보니 혼자 하기엔 벅차기에 부부가 합심한다. 이때부터 여자 특유의 알뜰 살뜰함과 노력, 남자의 성실함이 합쳐지면서 꾸준하게 살림 늘어가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또 잘 되가자 남자에게 슬슬 바람이 들기 시작한다. 좀 더 크게 하면 좀 더 잘 될거 같은 생각. 물건을 대주는 사람과 동업해서 좀더 큰 지역을 잡아서 판을 벌여본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처음에는 조금 성공하는 듯 하더니.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다. 꽤나 많은 돈을 까먹고서야 다시 작은 가게로 돌아온다. 작지만 알차게 꾸준히 벌어가는 것이 제일 큰 성공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아이들이 커나가고 결혼할 때가 되니 자식들 집 한칸 마련해주는 게 제일 큰일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남은 일이 자식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을 팔아 하나 둘 결혼을 시키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이 별로 없다. 달랑 시골 외곽에 집한채. 

이마저도 전세집이다. 그집이 마지막 남은 전재산이되었다.


어려서 아팠던 자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아기는 3개월간 부모 밑에서 자라고는 이후로는 늘 당신들 밑에서 자랐다. 집한칸이라도 마련하려면 젊을 때 열심히 벌어야된다고 생각해서 맞벌이 열심히 하라고, 아이를 봐주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7살이다. 다행히 아이가 순하고 착하고, 잘먹고 건강해서 큰 병없이 유치원까지 잘 지내고 있다. 평일에 부모님 집에서 있고 주말에 와서 아이 돌보기를 4년을 지내다가 2년전, 어떤 계기로 자식들과 휴대폰 약정하듯이 3년 약정을 하고 합가를 했다. 지난해 초에는 남편이 전립선이 안좋아져 아산병원에서 1, 2 차 수술을 하고, 지난해에는 내가 방광암으로 수술을 했다. 3기나 되긴 했으나 다행히 위험한 부위가 아니어서 떼어내고 항암치료 잘 받고, 회복이 되었다. 의지만 있으면 이정도 병은 충분히 나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하고, 건강을 위해 먹는 거 조절하고 운동하고, 스트레스 덜 받으려고 노력하고, 일도 안 하고 하다보니 많이 회복해서 지금은 90% 정도는 정상 회복 상태다. 이젠 6개월에 한번 정도 CT를 찍으러 가고 엊그제 다녀왔다. 하지만 한번 CT를 찍으려면 아침부터 가서 약먹고 6시간을 기다려서 검사받다보면 온몸이 지친다. 그리고 이 지친 몸은 한 이틀 온몸을 괴롭힌다.


자식들과 분가를 한달 앞두고 제주도 여행을 갔다왔다. 당일 치기로 바람 쐬러 갔다 온적은 있지만 이렇게 2박3일로 다녀오긴 처음이다. 리조트에서 숙박하고, 그랜저를 타고, 리조트에서 조식 부페를 먹고, 제주항에 가서 신선한 갈치도 사고, 생전 처음 배들어와서 작업하는 것도 구경하고, 가장 피크는 역시 한라산을 등반했다는 것. 힘든 여정이었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됐는지도 궁금하고, 젊었을 때 빨래골이며, 북한산 올라갔던 기억도 있기에 겸사겸사 올라갔는 데, 산을 오르는 맛이 여행의 가장 즐거운 추억이 될 듯하다. 정상 등반은 꿈도 못꿨지만, 한라산 1700고지까지 올라가서 병풍바위도 구경하고, 구름이 올라오는 장관도 구경한 것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위에 사진은 제주도 여행 중 첫째날 해안도로를 따라 섭지코지를 가다가 만난 월정리 해변가 커피가게에서 아이들은 커피를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에서 이야기를 하는 걸, 아들이 찍은 사진.


이제는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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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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