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야기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
갈수록 큰 의미의 가족은 엷어지고, 작은 가족들로 재편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노인인구는 많아지지만 젊은 세대는 줄어들고, 아이들은 많이 낳지 않고, 가족 구성원 없이 1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인구들도 많아지는 시대. 구성체가 바뀌어 가는 시기에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으로,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살고 있고, 명절이면 형네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오는 상황이다. 작은 부딪힘이라도 안생기게 하려고 와이프나 나는 노력을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부족한 배려심과 삐딱한 행동들을 계속하면서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아들과 조카는 올해로 6살을 맞았다. 내아이는 남자아이고, 조카는 여자아이다. 내 아이가 두달 먼저 나왔고, 조카는 두달 늦게 나왔다. 가장 큰 다른 점은 내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크다보니 두 양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밖에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를 해준다면 가끔 오는 조카 아이를 좀 더 이뻐해주고 아들을 좀 덜 이뻐해줘도 좋으련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냥 당신들이 당시 상황에 맞게, 기분에 따라 행동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조카에게 애정은 덜 가는 모양. 형이야 그러려니 이해하고, 그닥 신경 안쓰고 하지만, 그것들을 대하는 큰며느리 입장에서는 늘 작은 것 하나하나 불만이다.
입장차라는 게 있으니 내가 다 맞을 순 없겠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아들과 조카가 같이 장난을 치고 놀다가 매형의 화장품을 다 펌프질을 해서 온 방안을 어지럽혀 놓았다. 앞으로 그러지 마라고 하고 닦으려는 데, 이녀석들이 말로는 알겠어요 하는 데, 반성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래서 다시 잡아 놓고 혼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조금 긴장하는 눈치다. 그래도 아직 정말 혼난다는 생각은 안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벌을 세웠다. 그리고 큰소리를 냈다. 그러고 나니까 조카가 울려고 한다. 못울게 하고 벌을 계속 세웠다. 그때 장보러갔던, 애들 엄마들이 온다. 엄마를 보자 조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벌받던 손을 내리려고 하기에 다시 더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똑바로 벌 서라고.
그러자 애 엄마의 한마디 ‘왜 너만 울어, 엄마 맘 아프게..’,
앞뒤 맥락도 모르고 아이들의 아빠들이 버젓이 보고 있고, 상황에 의해 내가 혼내고 있긴 했지만, 잘못을 해서 혼내고 있는 상황에 그게 할 소린가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애들을 때린 것도 아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고 하지 말아야지. 순간 화가 불끈 났다. 이런 xxxxx..
내가 아들 혼낸 것도 이번이 두번째다. 할아버지, 할머니 한테 계속 장난치고 버릇없이 굴길래 타이르고 타이르다가 한번 폭발해서 몽둥이 들고 벌을 세운 적이 한번 있었고, 그 이후 처음이다. 한번 그렇게 심하게 혼내고 나서 아들은 대부분 말을 잘 듣는데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게 여지껏 두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동안 왔다갔다 하면서도 분명 내 성격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조카의 아빠인 형도 같이 있었고, 똑같이 혼내게 된 상황도 다 보고 있었는 데 말이다. 같이 장난치고 놀았는데 내 아들만 혼내는 것도 말이 안되잖은가 말이다.
명절 당일은 누나네 식구가 온다. 매형과 아이들까지 오면 진짜로 명절 같다. 매형 집이 서산 시골이고 장손이라 제사도 지내고 그러고 올라오다 보니 명절 음식들도 바리바리 싸오고, 우리도 먹을 것들 더 준비하면 집안이 훨씬 풍성해지고 시끌벅적해진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학년이 높아지면서 지난 추석 이후 처음으로 우리집에 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중간중간 매형은 회사일때문에 가끔 올라오긴 했지만, 누나 또한 아이들 챙기느라 바빠서 지지난주에 딱 한번 오고 그렇게 오랜만에 방문이었다. 그래선지 아이들도 훌쩍 커져있고, 만나는 반가움도 더한 듯 하다. 집안이 북적북적 해지니 아들은 더 없이 좋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고모(나에게 누나)가 워낙 아들을 이뻐하고 잘 놀아주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고모가 있는 내내 아들은 즐겁다.
그리고 엄마 또한 늘 딸을 보고 싶어하는지라 가까이 살지 못하는 걸 늘 서운해한다. 아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우리 마음대로 모든 게 되진 않으니까.
누나와 매형은 아이들의 공부에 엄청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매형이, 특히 첫딸에게. 이번에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된 딸이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신을 잘 받아서 최종적으로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늘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에 놀러 오더라도 영어책과 수학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노는 틈틈이 공부를 해서 그날그날 예정했던 목표치 공부를 채우곤 했다.
저녁을 먹기 전 아이들은 잠시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매형은 운전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다가 일어났다. 그리고 상을 차리고 있는 데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매형은 조카에게 그렇게 해서 목표한 거 채우겠냐는 말을 하고, 조카는 다 할 수 있다고, 반박을 하면서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서로 할 수 있다 없다로 싸움을 시작하더니 매형이 소리를 높였고 조카도 그에 지지 않고 대들었다. 중학교에서 사춘기가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아빠에 대한 반발심은 여전히 심한 것 같았다. 그렇게 싸움은 커지고 매형은 버럭버럭 화를 내고, 조카는 울면서 방에 들어가서 공부한다고 하고, 이 모든 상황이 매형에겐 장모님, 장인어른이 계시는 가운데 상을 다 차리고 이제 차분히 앉아서 저녁을 먹으려는 찰나에 일어난 상황이다. 순간 내가 화를 못참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계속 그치질 않아서 아빠가 일어나셨다. 매형을 다그치고 조카를 다그쳐 보지만 여전히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행동들이고, 서로 자기들 상황 설명만 한다.
공부시키는 거 좋다. 자기 자식 잘되게 하겠다는 데 옆에서 말릴 수도 없고 말려서도 안되는 일이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훼방은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정도껏 자리를 봐가면서 해야 될거 아닌가. 설에 올라와서 저녁을 챙겨서 먹으려는 순간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말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가운데도 매형은 계속 마지막 100일이란다. 자신이 딸에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젠 마지막 100일밖에 없고 그 이후엔 기숙사 학교 가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란다. 마지막 100일이면 오질 말든가. 오지말고 집에 꾹 눌러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든가. 처가집에 와서 이 무슨 행동이냐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고서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매형의 태도를 보면서 참 어렵고 힘들고 답답하고, ….
아빠가 조카를 데리고 오고 밥을 먹고 어느 정도 상황이 종료 되서 매형과 다시 한번 앉아서 한참을 교육이라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전혀 먹혀들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식 키워봐야 이해한다는 말. 내 아이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듯.
명절날 와이프는 처가댁가서 자고, 나는 다음날 처가댁 식구들이 모이는 때 가서 밥 먹고 술 한잔 하고, 세배도 하고, 명절 인사도 하고 그렇게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다 집에 오는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점심만 마치고 조금 일찍 집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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