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연말 1주일을 할아버지 집에 다녀오고 난 후,
거대한 일이 발생했다.
월요일에 야근하느라 조금 늦게 왔고, 화요일에 조금 일찍 들어와서
아이 돌봐주시는 이모와 바톤 터치를 하려는 데, 갑자기 하실 말씀이 있으시단다.
순간,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옆에 아들이 밥먹고 있어서 같이 들을까 따로 들을까 하다가
아들도 듣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같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연말 연초에 집안에 큰일이 생겼는데, 홀로 계시는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가시고, 중환자실에도 이틀 계시고,
그러시다가 지금 간신히 퇴원해서 집에 혼자 계시는 데, 돌봐주시는 분이 없으시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이 아버지를 돌봐주셔야 한다는 것.
근3년을 같이 하면서 우리를 한번도 불편하게 안하셨던 분이라, 최소한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같이 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 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우리의 난처함만 얘기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주를 마지막으로 이모와 작별을 하게 되었고, 급작스레 다시 YWCA에 요청을 했는 데,
지금은 사람이 없단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급하게 구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달 정도는 기다려야 할 성 싶다.
다시 한주를 할아버지 집에 보내고, 그다음주는 내가 이틀 휴가 내고, 와이프가 이틀 휴가내고,
그렇게 방학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년말 봄학기를 보내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모없이 첫주를 보내면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자렌지 돌려서 빵이나, 만두 구워먹는 법, 밥 따뜻하게 해서 먹는 법, 시간 맞춰 학원에 가라는 당부까지,
첫날 월요일은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현장에서 퇴근해서 다섯시쯤 집으로 왔다.
아이는 학교 방과후까지 끝내고 집에와서 티비를 보고 있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온 핫도그를 같이 먹으면서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물어봤다. 재미있었단다. 공부에 큰 스트레스가 없는 아들은
친구들과 많이 노는 학교가 그닥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끔은 학교가기 싫다는 얘기를 한다.
옛날 생각을 해보면 학교가기 싫은 날이 많기도 했다. 방학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게 시대가 변화고 교육 환경이 변했다고, 어떻게 바뀌겠는가. 집에서 주구장창 티비보며 뒹굴뒹굴 하는게
아이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일테니 당연히 학교가고 싶지 않을 터이다.
화요일은 일찍올 수 없어서 아들 태권도 끝나고 7시 넘어서 집에 돌아와보니 아이스크림 두개에
빵두개 먹고 태권도 갔다가 와서, 옷갈아입고 널부러 뜨려놓고, 엎드려서 티비 보고 있었다.
이모가 있을 때는 이런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 데..
앞으로 이런 시추에이션이 간혹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엔 다행이 설 연휴 기간이고, 이틀 휴가를 내서 또 한주는 잘 보내겠지만,
다음주엔 온전히 한 주를 또 보내야한다. 회사에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
1월말쯤 얘기는 해 놔서 앞으로 현장 퇴근이 좀 더 많아질 거 같은 데, 급하게 일이 생기면
사무실로 복귀해야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이 혼자 집에 좀더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도 있고.
학원을 좀 더 보내야하는 고민도 생기는 데, 아이는 특별히 더 다니고 싶다는 학원도 없고
배우고 있는 피아노 마저도 안 가고 싶다고 하는 통에 어떻게 아이에게 계속 다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아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토, 일 아침마다 기초부터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피아노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집에서는 생전 한번도 연습안하던 아들이
나에게 가르쳐줘야 하니까 뚜껑을 열고 자기 기초 책을 갖다주면서 손가락 연습부터 해보라면서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통에 나도 연습을 하고, 아들도 연습을 하면서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건지
계속 치면서 보여주고. 책도 갖다주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보라고 하고, 잘하는 지 못하는 지도 알려주고.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침시간이라 주변에 소음이 되지 않도록 소리를 많이 줄여놓고
하긴 했는 데,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번에 이어서 두번째 쳐보는 데, 처음보다 좀 더 잘되니까, 나도 재미있어진다. 올해 안에 한 다섯곡정도 칠 수 있도록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 아들에게 열심히 배우면서 같이 실력향상이 되면 좋을 듯.
아들과 아빠는 피아노를 치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샘이 숙제를 내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한번도 안하다가 어제 배운거 다섯 번 연습해야 한다면서
다섯번 연습하더군.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앞으로라도 잘 하면 될 거 같아서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가르쳐주면서 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있는 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이게 성공적이면, 수영도 다시 같이 배우자고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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