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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기아에서 최고 연봉(5억원)을 받는 이종범이 1군에서 밀려나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은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종범은“은퇴는 내가 결정한다”며“다른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고 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타율 1할8푼… 2군 추락… 은퇴 압박 받는 ‘야구 천재’ 기아 이종범 “다른 팀으로 방출되거나 연봉 깎이는 한이 있어도 한번 더 해보고 싶다”


지난 26일 광주 무등경기장. 초여름 열기가 후끈한 구장에서는 2군과 육성군(신인유망주를 훈련)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1군 선수들은 없었다. 한화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대전에 가 있었던 것.

선수들 틈에서 배번 7번이 보였다. 최근 은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종범이었다.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프로입문 첫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 MVP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일본 무대에서 쓰라린 좌절을 겪고 2001년 다시 돌아와 다시 ‘바람의 아들’로 부활했던 스타다.

소속팀 기아에서는 “경기당 3000명은 이종범이 몰고 온 관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주장으로 한국의 4강을 이끌었다. 이 야구천재가 지난 19일 1군에서 밀려났다. 올 시즌 타율 0.183(180타수 33안타)·1홈런·11타점. 명성이 무색한 성적표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2군으로 내려갔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소속팀 감독은 “여러차례 ‘구차하게 선수 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좋은 모습일 때 떠나는 것이 낫다’는 말을 이종범에게 했는데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취재진에게 했다. 말 그대로 은퇴 압력이다.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최근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깎은 상태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요즘 제가 1할8푼을 치고 있어요. 배팅이 문제인 거죠. 베테랑인 제가 상대 투수와 기(氣)싸움에서 먼저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그런 게 안 나오니까 마음이 불안하고…. 팀 성적도 안 나오니깐 고참으로서 그것도 힘들었죠.”

―기싸움에서 진다고 했습니까? 예전에는 후배 투수들이 이종범이 타석에 나오면 손이 덜덜 떨렸다고 했는데, 누구한테 밀리다니요?

“아무래도 내 자신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방망이가 안 맞더라도 타석에 들어가면 단순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타율이 나쁘게 나오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약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살아 나간 다음에 도루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는데, 최근엔 (상대 투수가) 스피드가 안 나오는 선수인데도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야 하나’ 하는 불안함이 몰려왔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나요?

“야구 시작한 뒤로 처음이죠.”

―1군에서 내려오자 마자 다음 날부터 은퇴설이 보도 됐는데.

“저도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걸 봤어요. 한달 동안 열심히 해서 재기를 해볼 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은퇴를 해야 하니 뭐니’ 이래서 서운했죠.”

―서정환 감독이 따로 불렀던 건가요?

“네. 팀 고참으로서 감독하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오버가 되다 보니까…. 뭔가 보여주고 나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은퇴 얘기가 곧바로 나오니깐 서운하기도 하고. 내가 못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프로의 세계가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정말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는데, 1년 못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이렇게 몰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분도 그렇고 해서 다음날 머리도 짧게 깎았죠.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웠어요. 내 자신을 떠나서 팬들을 위해서도 꼭 살아나야죠. 열심히 최선을 다 하고, 안되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을 해서 내 미래를 얘기 할 거고.”

―한달 동안 컨디션을 추스른 뒤 거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요. 이종범 본인은 열심히 했는데, 구단이나 감독이 ‘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 딱히 어디가 안 좋아서 1군을 떠난 게 아닌 만큼 나아진 걸 증명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그건 감안하고 있어요. 그땐 제가 결단을 해야죠. 제가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어요. 한달 뒤에 컨디션이 올라온다는 보장도 없고, 1군에서 불러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거야 감독 마음이지, 제 마음이 아니잖아요. 아마 팀이 꼴찌가 되면 저를 1군에 안 올릴 겁니다. 저를 올려봤자 필요가 없잖아요? 솔직히 여기(기아) 아니더라도 상관 없어요. 다른 팀에 가서 연봉이 깎여서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 그만 둬야죠.”

―서 감독한테 섭섭한 감정이 많은 것 같네요.

“한달 동안 1군에서 내려가 있으라는 것에 대해서 섭섭한 것은 없어요. 다만 명예롭게 은퇴를 마련했니 뭐니 하고 기자들에게 말하는 게 서운한 거죠(이 부분에서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변했다). 그냥 ‘한달 뒤에 오라고 했다’는 얘기만 하면 되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책임도 물어야 했을 테고…. 쫓기는 입장이니깐 그렇겠지요.”







―본인이 ‘아 이제 이종범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나요? (이종범은 데뷔 초기 5년간 연평균 21.2개의 홈런을 쳤지만, 올해는 단 1개에 그쳤다.)

“볼 같지도 않은 볼을 못 치고 삼진 당할 때 ‘아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2005년을 제외하고는 2001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주장을 맡아왔는데, 이번에 이종범 선수가 1군에서 내려온 뒤 장성호 선수가 주장이 됐더군요. 얘기 들은 게 있나요?

“솔직히 나랑 상의한 바가 없어요. 몰라, 감독 입장에서 팀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장을 시켰다는 얘기도 있는데. 임시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 끝날 때까지 하라고 했다는데…. 아, 이건 무슨 뉘앙스인지 저도 잘 모르겠고(목소리 톤이 또 한번 올라갔다)….”

―항의 안 했나요?

“따지고 들어갈 그런 일도 아니고. 제가 남한테 싫은 말은 잘 안 해요. 혼자 삼키고 마는 스타일인데. 언젠가는 열심히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오명을 씻고 나가야 하지 않나, 내가 할 얘기를 하고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가야죠.”

이종범은 1군에서 내려온 뒤 감독이나 단장 등 구단 고위 관계자들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정정민씨)과 아이들(1남1녀)이 실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나이 먹으니깐 가족이 제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힘든 시기이긴 하지만, 집사람하고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옆에 있으니깐. 잘 안 나가고, 집에 빨리 들어오고 하니까 좋아하죠. 아들 정후(서석초등학교 3학년)가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정후도 아빠가 유명한 사람인 줄은 알아요. 집사람이 아빠가 아파서 집에 있는 거라고 설명한 것 같아요. 아들은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방에 아빠 사진도 붙여놓고 그런 가요?

“아니요. 자기 방에는 스즈키 이치로(미국 메이저리그서 활약하는 일본 프로야구선수) 사진을 붙여놓고 있어요. 엄마가 ‘이종범이 아니라 이치로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라’고 매일 얘기하니까요.”

―일본에서 돌아올 때도 부인의 의견이 많이 작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엔 뭐라고 하던가요?

“집사람은 ‘은퇴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당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은퇴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남은 한 달을 마지막 기회로 삼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달라. 안 되면 그 때 가서 결정하라’고 얘기하더군요. 일본에 있을 때만 해도 야구를 잘 모르던 사람이었죠. 마음 고생하는 저를 보면서 뭐라고 얘기도 못하고, 그냥 힘내라는 편지를 적어서 제 가방에 넣어주곤 했어요. 그런데, 이젠 12년을 같이 살다 보니까 다 알죠.”

―체중이 전성기 때보다 많이 불었죠?

“지금 78㎏쯤 나갑니다. 전성기 때는 68㎏이었죠. 그때는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었죠. 지금 10㎏ 늘어난 것 중에서 근육도 있겠지만, 60%는 나이 먹으면서 붙은 살일 겁니다.”

실제로 근력 훈련하는 이종범을 지켜본 결과 군살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어깨에 메고 하던 100㎏짜리 역기에서 이종범은 20㎏짜리 원판을 빼내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야구 철학은 뭡니까?

“예전에는 유니폼만 입으면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야구는 9명이 하지만, 개인이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인이 팀과 팬을 위해서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노력해야만 ‘베스트 9’에 들 수 있죠. 노력하고 쉬지 않는 선수만이 진정한 승자가 됩니다. 특히 프로에선 더 그렇죠. 프로에서는 그게 바로 돈과 명예로 연결됩니다. 저도 제 아들한테 항상 노력 이상 중요한 게 없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줍니다.”


# 야구 몰랐던 아내, 이젠 전문가

―방망이에 ‘忍(인)’자를 새겨 놓았는데.

“1996년에 방위 복무를 마치고 인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셨는데, 그 땐 잘 몰랐거든요. 나이 들면서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특히 일본에서는 이 ‘참을 인(忍)’자를 보면서 생각 많이 했죠. 프로의 세계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종범 선수 말고도 그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데.

“우리 팀 2군 선수들은 제가 준 방망이 하나씩은 다 갖고 있습니다. 다른 팀에도 있고…. 2군의 경우는 경제적으로 방망이 하나가 아쉬운 선수들도 있고 해서 자주 주죠. 제가 준 방망이로 안타를 치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 동안 김응용, 호시노,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감독 등과 함께 했는데, 어떤 감독의 스타일이 제일 마음에 들고, 또 닮고 싶은 스타일인가요?

“저는 일단 플레이 자체는 선수가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전의 연습이나 모든 면에서 선수에 대해 신뢰가 있으면, 선수는 따라간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김응용 감독님이나 김성한 감독님 스타일이 좋아요.”

―그 중 한 분만 꼽으라면요?

“김응용 감독님이요.”

―김 감독은 좀 괴팍스러운 면이 있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성질이 괴팍하긴 하시죠. 하지만 그런 면이 있어야 감독의 리더십이 발휘되거든요. 어쩌면 카리스마하고도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종범도 카리스마 얘기에선 빠질 수 없다. 에피소드 하나. 인터뷰를 하기 직전 이종범은 후배들과 체력단련실에서 근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앞서 땡볕 아래 타격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에어컨이 가동되는 체력단련실에 들어오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누군가 “시장바닥이냐. 훈련들 해라”하고 주의를 줬지만, 소용없었다. 한동안 묵묵히 바벨과 씨름하던 이종범이 결국 한마디 날렸다. “아, 정말 ‘절라’ 시끄럽네. 입으로 훈련들 하냐.” 이후 훈련이 끝날 때까지 체력단련실에서 입을 여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삼성 양준혁 선수와 자주 비교됩니다. 양준혁 선수는 93년 신인왕을 탔고, 이종범 선수는 그 해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지요. 그런데 요즘 이종범 선수는 1군에서 밀려났는데, 양준혁 선수는 펄펄 날고 있거든요.

“준혁이 형은 1년 선배이자 프로입단 동기입니다. 지금 잘하는 걸 보면 저보다 훨씬 관리를 잘한 것 같아요. 준혁이 형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말 더 많은 기록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준혁이 형을 보면, 나는 왜 매 타석마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서지 못했나, 더 간절했더라면 지금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질책을 하게 되지요.”

―예전에는 경기 시작 사이렌을 울렸었죠.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종범 선수가 홈런을 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첫 타석 초구 홈런을 몇 개를 쳤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선두타자 첫 타석 홈런 기록은 40개가 넘을 겁니다. 2위랑도 많이 차이 나고요.”

―야구를 하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어렸을 때는 힘들어서 많이 울었죠. 선배들한테 맞고 그러면서…. 커서는 시련이 많이 찾아왔을 때 울었어요. 일본에서 부상 당했을 때도 그렇고, 짐 싸가지고 오기 전에도 울고. 남이 보는 앞에서 울지는 않았어요. 힘들거나 하면 혼자 술 먹고 울었죠. 오히려 애기 엄마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부인도 야구광이었겠군요.

“아니요. 와이프는 야구를 전혀 몰랐어요. 프랑스로 디자인 공부하러 유학 갔다가 저랑 결혼했는데, 예전에는 야구를 하나도 몰랐죠. 그런데 요즘은 전문가가 다 됐어요. 저보고 몸이 빠져서 치니 어쩌니 하는데…. 야구 시작한 아들 녀석이 그 잔소리 들으려면 힘 좀 들 겁니다.”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에는 무엇이 제일 힘들었나요?

그는 4년간(1998~2001년) 311경기 출장에 27홈런 174득점 99타점 53도루의 초라한 성적으로 끝났다.

“여러 면에서 힘이 들었습니다. 그 중 제일 큰 문제는 부상을 당한 거지요. 가와지리 테쓰로라는 투수의 볼에 왼쪽 팔꿈치를 맞았죠. 수술하면서 철심을 박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술을 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어요. 그 때 이후로 ‘팔로 스루(Follow through·공을 치거나 던진 후에 스트로크나 팔의 동작을 계속 진행하는 일)’가 되질 않아요. 감각을 잃어버린 거죠. 내가 가지고 있던 동작이 모두 흐트러졌죠. 팔꿈치 다치기 전에는, 내가 봐도 내 체격에 어떻게 이런 홈런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스윙이 간결하면서도 스피드가 빨랐는데, 이상하게 나쁜 점만 버릇으로 남게 되더군요.”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 1년차 때까지는 제 훈련 다 끝나고 다른 선수들이 배팅 볼 칠 때도 알아서 수비훈련을 했어요. 누가 보던 말던 공을 잡아 1루 송구까지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선수들이 없어요. 프로 선수는 코치가 시키기 전에 뭔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연습하고 채워야 합니다. 자기 부가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그걸 안 해요. 아직까지 간절한 소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들이 돈이 많은지…. 왜 1군에 안 올려 주느냐고 불평만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완벽하게 만들어야 1군 기회를 주는 거죠. 문제가 있으니깐 안 올리는 겁니다.”

―야구 말고 다른 스포츠도 잘 하는 게 있나요?

“축구를 좋아합니다. 원래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던 광주 서림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었어요. 운동장에서 학교 야구부가 훈련을 하는 걸 보고는 야구를 시작한 거죠. 고 2때 축구를 하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어요. 동계훈련 시작하기 직전이었죠. 고 3 형이 강하게 슛을 날렸는데, 그걸 막겠다고 붕 떴어요. 그런데 볼이 제 발에 맞으면서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땅바닥에 떨어졌죠. 36시간 만에 깨어났어요. 그 땐 MRI(자기공명영상)검사 같은 것도 없었죠. 다행히 수술은 안 했는데, 그 다음엔 감독님이 축구를 못하게 했어요. 일본에 있을 때는 골프도 배웠습니다. 비(非)시즌에 가끔 하는 정도죠.”




# 돈이요? 벌만큼은 벌었어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아, 나도 축구를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한데.

“지금도 가끔 아들 녀석한테 얘길 하죠. ‘차라리 축구를 해라. 그리고 프리미어리그로 가라’ 이렇게 말이죠. ‘야구장은 전국에 30개정도 밖에 없는데, 축구장은 300~400개가 된다’는 얘기도 하지요. 물론 애 엄마한테는 엄청 욕 얻어 먹죠.”


―돈은 아쉽지 않을 만큼 번 것 아닌가요?

“그렇죠. 벌 만큼은 벌었죠. 앞으로 은퇴를 하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을 육성하고, 공부도 더 하고,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겠죠. 야구 해설도 하고 싶고….”

―요즘 시간 여유도 있는데, 친구들이랑 자주 어울리나요?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 심재학 선수랑 부부 동반해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팀은 연패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밥 먹고 다닌다’고 인터넷에 올라와서…. 어쨌든 이젠 연습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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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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