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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7년의 외도를 끝으로 복귀했다.

2009년 8월 2일 출산과 와이프의 3개월 출산휴가를 끝으로 우리집을 떠난 아기는 늘 호평동 부모님 집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주말이면 가서 아이를 보고 데리고 처가댁에 갔다가 다시 데려다주고 주중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그렇게 5년을 보내다가 3년을 예정으로 부모님과 합가 후에도 늘 우리는 출퇴근으로 아이를 돌보는 시간보다는 부모님이 돌봐주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아이를 부모님 손에 맡긴체 7년을 지내다가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를 두고 다시 분가를 했다.

여전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냅두고 우리만 편하게 다시 주말 가족 생활을 한 지 3개월, 잠시 마지막으로 신혼의 생활을 만끽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1월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아이를 케어할 것인가?

여지껏 키워주신 부모님께는 더이상의 신세는 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러는 와중에 부모님은 서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한가지 최선의 방법은 가장 가까이 사는 언니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고, 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을 했고, 언니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1월말쯤, 어려움이 있을 거 같다는 언질을 내비쳤고,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곤 다른 방법을 찾았다. 가까운 와이프 친구도 괜찮다고 생각했는 데, 와이프가 불편해 했다. 

마지막으로 와이프가 학기 초 한달간 휴가를 내는 것이었다. 안식 휴가를 쓰고, 다른 휴가들을 미리 다 쓰면 대략 한달 정도는 쓸 수 있을 거 같았고, 최소한 3주 정도는 가능하고 나머지 한주 정도는 내가 쓰면 될 듯 싶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와이프의 직책상, 또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방법은 단하나, 내가 휴가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돌아갈 듯 싶다.

3개월의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1년 정도 충분히 휴직을 해서 아이를 케어했으면 좋겠으나, 그러기엔 우리 회사도 너무 급변하는 시기여서 무작정 1년동안 휴직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월에 복귀하면, 그나마 괜찮을 듯 싶어서 3개월만 휴직을 했다. 회사내에서 남자가 육아 휴직을 낸 경우도 내가 처음이었던 듯. 


1년 중 가장 짧은 2월은 긴 설 명절과 1주일간의 롯데월드 야간검사와 한주간의 기술원 파견으로 지나가고, 2월29일 마지막 출근으로 사무실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10시30분까지 야근을 하고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 보안 사항 체크를 하고 보안점검표에 이름을 적고 나왔다.


3월1일엔 드디어 호평동에서 아들을 데리고 할아버지가 지하철을 타고 오셨다. 지난 토요일에 아들 짐을 한차 가득 싣고 오느라 우리가 차를 델고 오는 통에 차가 우리집에 주차해 있던 상황이었다. 점심먹고 추근추근 지하철을 타고 와서, 처음 개교하는 초등학교에 미리보기 체험을 했다. 신설된 혁신학교라 무언가 다른 것들이 많이 있으리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새롭게 지어진 학교라 깨끗하고 좋아보였다. 그 옛날 우리가 다니던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큰 체육관이 있고, 강당이 있고, 식당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운동장은 작아졌지만, 알차게 꾸며진 느낌.

무엇보다, 많이 자유롭게 학교가 재미있는 공간이 되서 아이가 늘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2일. 

드디어 입학식을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오늘 와이프는 회사 업무 미팅이 11시에 잡혀서 10시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할머니는 누나네 집에 내려가 있고, 내가 아들과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두 모시고 입학식에 가야 하는 상황.

그 와중에 와이프가 언니에게 할머니를 부탁했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면, 좀 편해지겠거니 했건만, 웬걸 언니가 오지도 않고 전화를 하니, 있다가 학교로 바로 오겠다는 답. 갑자기 답답해지기 시작. 

어쨌든 걸어갈 수 있는 길이기에 모두와 여유있게 걸어가기 시작해서 3층 강당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온 가운데 아직은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히고, 제일 연로하신 외할머니를 뒤쪽 자리에 앉혀드리고 잠시 숨을 돌리면서 간간이 사진을 찍는 와중에 뒷 사람의 짜증섞인 목소리, 카메라가 크다보니 위협을 느꼈나 보다. '뒤에 사람 있는데요.' 조심좀 하라는 목소리. 분명히 건드린 적 없는 거 같은데. 사진 찍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행사가 약 한시간 진행되고 마칠 시간이 다되어가자 언니와 근처에 사는 언니의 딸이 꽃다발과 케익을 들고 등장.

어쨌든 반갑게 인사를 하고, 뒤에 서서 구경하다가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 찍으면서 끝내는 단계였다. 

아들이 사진찍는 순서를 기다리며, 구경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외할머니 앉아 있는 자리를 보니 갑자기 없어지셨다.

그 앞으로 나가봐도 없고, 화장실로 가봐도 없고, 정문앞까지 가봐도 없고, 걱정이 되어 여기저기 쫓아다니는 데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강당 사진찍는 거 끝나가니 빨리 올라오라고. 

사람을 잃어버렸는 데, 사진이 문제인가 싶다가도, 사진 찍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다시 얼른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마무리 하고, 찾으러 돌아다녔다. 아들과 할아버지 언니네는 집으로 가 있으라 하고, 차를 갖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와이프한테 연락을 하고, 집으로도 전화를 해보고. 역시나 집은 전화를 안 받는다. 다시 전화를 해보고 차를 돌고 있으니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방금 집에 도착하셨단다. 집에 모셔가서 식사라도 하시자고 말씀 드렸으나 집에서 드시고 쉬시겠단다.

한두번 더 권하다 발길을 돌렸다. 나오는 길에 집에서 중국집 연락처 없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시키겠다고 메뉴 정하라고 해서 동네 괜찮다는 중국집에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하고. 한숨을 돌렸다. 어차피 배달이 밀려서 시간도 걸린다고 해서 천천히 집으로 갔다. 난 한참 답답했는데, 언니는 큰 반응이 없다. 원래 그런가보다 한다. 

하지만 갈수록 쇠약한 노인을 무작정 잃어버린다는 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행이 길가에서 택시를 타고 오셨다는 게 훨씬 안심이 되긴 했다. 


입학식은 짜장면이라 한그릇에 탕수육과 만두까지 배부르게 먹고, 원두를 갈아서 진한 커피에 근처 맛있는 떡 케익을 잘라서 먹으니 배가 찢어질 지경. 거하게 먹고나니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가신다하여 짐을 정리하고, 할아버지는 차를 몰고 호평동으로 출발하시고 언니네는 집까지 살살 걸어가시고..아들은 집앞에 내려와서 숲속놀이터에서 놀기 시작.

너무 피곤했던지라, 아들에게 놀라고 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바로 쓰러져버렸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보니 어느새 아들이 들어왔다. 실컷 놀고 들어왔나 보다. 조금 기다리니 와이프가 퇴근하고 바로 왔다. 치즈 계란말이를 먹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치즈 계란말이를 만들어서 아들에게 먹이고, 난 속이 안 좋아서 굶고, 와이프는 점심을 네시에 먹었다고 굶고, 달랑 맥주하나. 


아들은 저녁을 먹고 바로 치카치카 하자마자 잠이든다. 그리곤 그렇게 긴 아들과의 첫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부터 3개월간의 육아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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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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